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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May 28. 2016

29. 꿈같았던, 짧은 연애 - 1

사실은 말이죠...




작년 말까지, 몇 번의 소개팅을 하면서 느꼈다. 아무래도 소개팅은 아니구나. 소개팅 자리에 나오신 분들이 별로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회사에서, 교회에서, 혹은 일상에서 자연스레 만났더라면 분명히 호감을 느꼈을만한 분들이었다. 소개팅이라는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그 어떤 설렘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략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누군가 소개해주겠다는 사람을 만날 게 아니라, 어떤 경로로든 보고, 내가 먼저 호감이 간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올 초,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페북 친구가 자기 지인과 함께 찍어서 올린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 친구는 원래 베를린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함부르크에 놀러 갔다가 거기 있는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 있던 친구의 친구가 너무 밝고 예뻐 보였다. 댓글을 보니 사진에 함께 있던 그녀가 남긴 댓글이 있었다. 얼른 링크를 타고 그녀의 타임라인으로 가 보았다. 


내 친구가 성악을 전공하고 있고, 독일에는 음악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녀 역시 음악 공부를 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이 틀렸다. 그녀는 독일에서 독어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일단 인문학을 전공하는 분이라는 사실이 참 반가웠다. 게다가 독일에서 독어학이라니!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무척 어려 보였는데, 내 친구와 주고받은 댓글을 보니 동갑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나와 네 살 차이. 그렇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평소 그 친구와 그렇게 교류가 많은 사이가 아니었기에 조금 망설여졌다. 평소엔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너의 친구분이 너무 괜찮아 보인다고 소개해달라고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친구와 그녀는 둘 다 독일에 있는데, 한국에 있는 내가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한 며칠을 고민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렇게 그냥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내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라고, 잘 지내냐고, 독일 생활은 좀 어떻냐고... 처음 말을 걸었을 땐 쉽게 그녀에 대해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날은 그냥 안부만 묻고는 대화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며칠을 끙끙대다가, 결국 다시 말을 걸었다. 실은 며칠 전에 네가 함부르크에서 만난 그 친구분 인상이 너무 좋아 보여서 말을 걸게 되었다고. 혹시 그 친구분 지금 만나는 분이 있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약간 당황하더니, 지금 아마 만나는 사람 없을 거라고 대답해줬다. 하지만 작년에 박사과정을 시작한 터라서 앞으로 2년은 더 독일에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하느라 한국에도 잘 가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녀가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아, 그렇냐고. 알겠다고. 내가 언젠가 독일에 놀러 가게 되면 한 번 소개시켜달라고.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그 날, 마음먹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독일로 가자. 









일단 나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5월 초쯤 있는 어린이날 연휴를 끼고 휴가를 내서 10일 정도의 시간을 내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당시 마음속에 고민하고 있던 이직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 그렇게 해서 퇴사와 입사 사이에 시간을 벌어 독일로 여행을 가는 것.


주저하고 있던 마음은 적극적으로 변하였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몇 군데 회사들의 채용 공고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침, 운명처럼 내게 딱 맞는 포지션의 채용 공고가 하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정성 들여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심지어 같이 일했던 파트너사와, 이미 퇴사한 전 직장 동료분들을 통해 추천서까지 받아서 덧붙였다. 


물론 이직의 가장 큰 이유는, 더 가슴 뛰는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26. 이직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독일에 있는 그녀의 존재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불씨가 되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도전을 감당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나는 내가 원하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사 조건을 조율하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다름이 아닌, 최대한 늦게 입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퇴사를 하고 독일에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개팅을 하기 위해 입사를 늦게 하고 싶다고 말 하진 않았다. 리프레시할 시간이 절실하다는 이유로 입사를 미뤄달라고 부탁했다. 새 회사는 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모든 조건이 다 조율되고, 최종적인 입사 확정 메일을 받은 날. 

나는 함부르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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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곧 스포인 이야기.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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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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