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연휴라서 고향에 내려왔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아빠 동료 분이 살고 계시는 영암 시골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에 정자에 다 같이 누워 노닥거리는 와중에도, 동료 분 밭에서 고구마대를 한 가득 걷어 왔다. 더위에 뒤척이던 밤을 보내고, 볕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광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지난밤 부족했던 잠을 충분히 보충하고는 에어컨이 빵빵한 거실로 나와 앉았다. 엄마가 혼자서 어제 걷은 고구마대를 펼쳐놓고 다듬고 계셨다. 나도 TV만 보고 있기 뭐해서 엄마를 거들고 나섰다.
노닥 노닥. 급할 것 하나 없기에 고구마대 까며, 드라마를 보며 그렇게 엄마랑 마주 앉았다.
그러다 엄마의 조심스러운 물음.
(엄마)
"아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고?"
(아들)
'실은 작년에 소개팅 몇 번 했는데 잘 안됐어요.
소개팅에 나온 분들은 다 좋았는데 이상하게 상황 때문인지 마음이 안 가더라고요.
그리고 독일 가서 좋은 분을 만났어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넘게 연애도 했는데, 결국 잘 안됐어요.
거리도 멀고 시차도 있어서 연애하기가 어렵더라구요.
헤어지고 조금 힘들었는데 엄마 걱정하실까 봐 일부러 말 안 했어요.
나 힘들어하는 거 알면, 멀리서 엄마도 힘들어하실 거잖아요.
중간중간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면 슬쩍슬쩍 짝사랑도 해 보지만,
다들 짝이 있거나 저 좋다는 사람은 없더라구요.
저도 매일매일 사랑하고 싶어서... 좋은 사람 만나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데.....'
"네, 뭐 별일 없어요."
서른둘, 여자 친구도 없는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조급해오나 보다.
아니, 어쩌면 아들이 불편해할까 봐 말씀은 안 하시지만 이미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이번처럼 온 가족이 여행을 갈 때마다, "아들 딸 결혼하면 이렇게 우리끼리 여행 갈 일도 없겠지."라고 좋아하시면서도, 매일매일 아들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신다는 어머니.
스윽 스윽 벗겨지는 고구마대를 다듬으며
엄마한테도 행복이 될, 좋은 사람을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