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논쟁적이고, 가슴 아픈 말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이성이 있고, 열심히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가정해보자.
보통 당신이 먼저 시작하는(!) 카톡 대화 중에 그 사람에게 하루 세 번 이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만의 짝사랑일 가능성이 70% 이상이다.
특히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확률은 90%가 넘는다.
엄청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이 퍼주는 그 모든 것은 '호구짓'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보통 서로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으면, 감사함보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피드백이 오곤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쪽도 대화를 더 이어가고, 만남으로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로 오늘 하루 대화가 끝났다면...쯧쯧쯧. 안타깝다.
여름쯤, 아직 학교에 다니는 후배 한 명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는 직장인이고, 그 친구는 학생이다 보니 내가 이것저것 사주게 되었다.
내 형편에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내 형편에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을 주고, 만날 때마다 그 친구가 관심 있을만한 것에 대한 책과 정보들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대화의 끝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였다. 내가 뭔가 더 해주겠다고 해도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짝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지금 그 사람과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른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무리 내가 그녀에게 잘 해주어도 우리가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와 애정, 고마움과 설렘 사이엔 쉽게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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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짝사랑에 푹 빠져있다 나와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막무가내의 일방적인 퍼주기로 인해 그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만 않았다면(★매우 중요),
내 마음에 누구보다 충실했던 시간이자,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지 않은가.
내가 호구였다고 길길이 날 뛰며 분해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그 사람이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았다고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비록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좋아했던 그 마음만으로도 나에게 좋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도, 누군가를 좋아하며 퍼주기를 했을 거고, 그 누군가도 또 누군가를 좋아하며 '호구짓'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억울해할 것 없다.
사랑 앞에서, 우리 모두는 '호구'가 된다. 그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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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