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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Oct 31. 2015

05. 소개팅 이야기, 하나 : 거절에 익숙해지기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이왕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 써야겠다.


30대 솔로남에게 주어진 사랑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짝사랑이거나, 소개팅이거나. 

소개팅을 빼면, 솔직히 할 말도 많지 않을 정도이다. 


이십 대 때 나는 소개팅을 해 본 적이 없다. 

소개팅을 안 해도 여자친구가 항상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연애를 안 하거나,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과 연애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어 솔로가 되니, 소개팅을 아니할 수가 없게 됐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만큼 쉽지 않은 나이다. 





첫 번째 소개팅은 친척을 통해서 소개를 받았다. 

미리 이름과 번호를 받게 되어 카톡 프로필과 페북을 통해서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너무 예쁜 분이라서 덜컥 하겠다고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연락을 해서  그다음 주말에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는 동안

소개해준 친척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듣고,

그녀의 페북과 카스를 통해서 그녀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고향도 같고, 나이도 비슷하고, 영화나 음악적 취향도 비슷한 것 같고, 심지어 그녀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를 보니 정치적 성향까지 맞는 것 같았다. 

이미 만나기 전부터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있었다. 

소개팅 한 번도 안 해본 놈이, 첫 소개팅부터 이렇게 설레발을 쳤으니 원.


드디어 소개팅 날, 합정 근처 레스토랑으로 약속을 잡고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사진으로만 보던 예쁜 그녀가 내 앞에 앉았다. 

소개팅을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기에, 

그냥저냥 음식을 시키고 그냥저냥 대화를 나누었다.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 어디 사시는지, 추석에 고향은 잘 다녀오셨는지요?ㅋㅋ


내가 과묵한 편은 아니라서, 대화가 뚝 끊겨서 엄청 어색해지는 일 없이 식사도 잘 하고 후식도 먹었다. 

말로만 듣던 취미도 묻고, 좋아하는 영화도 묻고, 여튼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고(참고로 나는 차가 없다. 혹시 이게 문제였던 걸까?),

그녀가 도착했을 즈음, 잘 들어가셨냐는지, 오늘 봬서 반가웠다는 문자를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첫 소개팅 치고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기대했던 것 만큼 대단히 두근거리거나 설레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애프터를 신청하기 위해 그녀의 일과가 끝나길 기다렸다. 

이윽고 저녁 6시가 지나고,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카톡을 날렸다. 


일 잘  마무리하셨나요?


아... 그런데 6시에 업무가 끝난다는 그녀가 1시간이 넘도록 카톡을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아마 오늘 갑자기 야근을 하거나 사정이 생겼나보지. 별일 아닐 거야. 


이윽고 밤 늦게 온 그녀의 답장. 네, 잘 들어왔어요. 


혹시 이번 금토일 중에 가능한 시간이 있을까요??

금요일부터 연휴였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선택지를 드렸다. 


그런데 그녀의 답변,



이번 주에 지방에서 친구가 올라와서 주말 내내 같이 있기로 해서 어려울 것 같아요.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 거절이다. 굉장히, 전형적인. 두 번도 아니고, 한 번에. 






두 번째 소개팅은, 아는 누나를 통해서 연결이 됐다. 

첫 소개팅 충격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이라서 처음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왕 충격 먹은 거 이참에 해치워버리라는 누나의 조언. (이 누나 뭐야 ㅋㅋㅋ)


나의 첫 소개팅 경험을 듣더니, 이번엔 예쁜 사람보다는

너랑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한다. 


성격은 차분하고,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에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자기 직업을 가지고 착실히 일하고 있는 여자분이었다. 


그래요, 그럼. 


그녀와 연락을 하고, 바로 그 주말에 광화문에서 만났다. 

누나가 이름이랑 페북 알려줘서 나는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고 느낀점은, 첫 번째 분도 그렇고 두 번째 분도 그렇고, 내가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고 나오셨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왜 그러냐고 여자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어차피 현빈이나 강동원이 나오지 않을꺼란거 알고 있으니까요?"라는 대답.

참으로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그녀와도 첫 번째 소개팅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말이 조금 느리고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라서 막 술술 대화가 풀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 수도 많아지고, 밥 먹고 차 마실 때 쯤엔 '수다'를 떠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나름 재미있게 놀았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는 그런 느낌. 



그래도 사람은 한 번 만나서는 모르니까, 애프터 신청을 했다. 


솔직히 이번엔 기대도 안 했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니까. 

좀 특이하게 이번엔 같이 영화를 보자고 애프터 신청을 했다. 

그녀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도 솔로 된 후에 꽤 오랫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극장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가 받아들였다. 

허헐. 생애 최초 애프터 성공. 


이야기를 하던 중 그녀가 가볍고 재밌는 영화를 좋아한다길래, 

영화 <인턴>을 같이 보기로 했다. 

그다음 주에 만나서 간단히 초밥을 먹고, 함께 영화를 보았다. 


영화 진짜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영화'에 몰입했다. 

앤 해서웨이 왤케 예뻐. 대박. 로버트 드니로는 너무 멋있어. 나도 저런 직장인 되고 싶다. 우왕우왕.


이윽고 영화가 끝나고. 


영화 정말 재밌네요~

네, 그렇네요. 잘 봤어요. 

네, 저도 덕분에.^^


그렇게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그 후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개팅은 참 특별하고 특이하다. 


우리는 소개팅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거절' 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서 거절을 하는 경우는 흔히 비즈니스 미팅이나, 면접 상황일 때가 많다. 

즉 소개팅은 '연애'라는 비즈니스를 두고, 상대방이 내 연인으로 적합한지 '면접'을 보는 상황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작위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잘 거절하는 것이 매너이고, 

또 그런 거절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 소개팅이기도 하다. 


이런 만남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이런 만남을 통해 내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성으로서 거절당하는 이 상황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소개팅은 참 어렵다. 


(날씨가 와 이리 추워졌노...마음 탓인가)



*참고로 제 글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들은 내용은 동일하되, 혹시나 당사자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구체적인 지명 등은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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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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