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 컨셉진
“오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눈빛이 흔들리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늘 나 뭐 변한 거 없어?”와 더불어 남자들을 괴롭히는 2대 난제.
그녀에게는 유독 많은 기념일이 있었다.
오히려 100일, 200일과 같은 단순한 숫자에 대한 기념일에는 무관심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스킨십 데이’,
처음으로 내 방에 와서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었던 “라면 먹고 갈래?” 기념일,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소개했던 ‘1등 남친 코스프레의 날’…
그녀는 소소한 우리의 일상과 기억들을 기념일로 만들어 추억했다.
처음엔 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그녀만의 방법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르며 자칫 무료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연애였는데,
그러한 기념일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그 때의 설렘과, 서로의 의미를 되새겼다.
6월 23일 역시 우리에게는 꽤 중요한 기념일이었다.
그 날은 ‘쫄면 데이’였다.
매운 것을 아예 못 먹는 내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매운 쫄면을 함께 먹은 날.
그 뒤로도 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었지만,
그래도 쫄면 데이에는 그녀와 함께 분식집에 가서 쫄면 몇 젓가락을 함께 먹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좋았나보다.
한달 전부터 쫄면, 쫄면 노래를 부르면서 이 날을 기다렸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우리가 헤어진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6월 23일이 다가오면 쫄면의 그 알싸한 매운맛이 떠오른다.
너에게도 아마 한동안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말 우리의 쫄면 데이를 잊어야 할 것 같다.
그녀에게 이 날은 앞으로 결혼 기념일이 될테니까.
친구에게 건너들은 소식에,
혓바닥에 전해지던 쫄면의 매운맛 같은 통증이 가슴 한 켠을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의 쫄면 데이는 이제 안녕히.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 진심으로, 행복하길.
<서른의 연애>에는 저와 인연을 맺은 몇 몇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글에 등장했던 사람.
저와 이십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6년 반을 연애한 친구가 있어요.
첫 번째 글 <나는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잔인했던가>와 마지막 글 <오랜 시간 연애했던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친구에 대한 글이니,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녀가 어제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의 결혼 이야기는 꽤나 충격이었어요.
지난 3월에 만난, 그러니까 만난지 3개월 된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지요.
저는 6년 반을 만났음에도 결국 헤어졌는데, 3개월을 만난 사람과 평생을 약속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어떤 것인가봅니다.
<서른의 연애>는 '서른 셋' 챕터에서 끝났지만, 저는 여전히 '서른 넷' 챕터를 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