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08 컨셉진
짝사랑으로 점철된 나의 연애사.
덕분에 나는 그녀들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서 무던히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서른네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그녀들의 이상형이었다.
매일매일 요가를 다니는 그녀는 함께 요가를 할 수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했고,
그 날 바로 조용히 회사 근처 요가원에 등록했다.
결국 그녀와 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2년째 요가원에 다니며 몸과 마음을 충전하곤 한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기를 좋아해 운전을 잘 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그녀를 위해,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는 내가 차를 샀다.
결국 그녀는 다른 남자 친구가 생겼지만,
그 차 덕분에 나 역시 좋은 사람들과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이상형은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짝사랑했던 친구의 것이었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였다.
그녀의 이상형은커녕 대화라도 제대로 해 보기 위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나름대로 활동에 참여하면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그녀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녀는 과에서 가장 키 크고 잘 생긴 동기와 연애를 하였지만,
그때의 배움 덕분에 적어도 나 자신이 가부장적인 남성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사회가 여성에게 억압적이라는 사실을 인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사람들이 TV나 강연에 나와서 말한다.
“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딱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의 이상형이 되고자 하는 열정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동기부여가 되곤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저는 말과 글이 예쁜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내 삶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수십 개의 글을 쓰고, 한 권의 책을 내고,
이렇게 컨셉진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
비록 그 모든 짝사랑은 실패했지만,
그녀들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 애썼던 나의 마음까지 실패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들은 또렷이 내 안에 남아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 덕분에 나의 다음 사랑은 분명 더 행복하고 풍요로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짝사랑러들, 힘내시길.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 평생 노력할 것을 약속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