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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Dec 09. 2018

서른다섯엔,  서른다섯의 글을.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다.

해피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은,

이야기 속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살았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끝이 나고,

우리는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서른의 연애>는 서른 하나에서 시작해서, 서른셋에서 끝이 난다.


나는 당연히도 2018년, 서른넷의 시간을 살았지만

마치 나의 모든 이야기는 <서른의 연애>에서 모두 끝나버린 것처럼

서른넷에는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것.

더 이상 쓸 수 있는 글이 없다는 것.


내 삶에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무척이나 슬프고 좌절스러운 경험이었다.






올해 나에게는 참 좋은 일들이 많았다.

책이 나왔고, 직장에서도 좋은 프로젝트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집이 생겨 인테리어도 하고 새 집으로 이사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올해 가장 불행했다.

사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내 곁을 떠났고,

이십 대 후반을 함께했던 이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결혼을 했다.

몇 번의 짝사랑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36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죽고 싶다.'

아니, 그 보다는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한 해였다.



이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놓는 것이 두려웠다.

<서른의 연애>라는 책을 통해 받았던 사랑과 기대처럼,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이런 우울한 마음을 내놓았을 때 실망을 주고 외면당할까 봐 두려웠다.


내가 내놓은 책이 눌려, 내 삶의 우울에 눌려.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 버겁고 어려웠다.






꽤나 길었던 침묵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책도 이제 더 이상 판매가 늘지 않고,

브런치의 조회수도 어느새 한 자리까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그냥 마음이 툭 놓였다.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썼던 날.

가을치고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좋은비'라는 이름을 붙이고, 첫 번째 글을 쓰던 마음.


다시 한번 사랑하게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

굳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먼저 스스로를 위해 내 삶을 남겨놓겠다는 의지.


어떤 글은 다듬고 다듬어 내놓았지만,

어떤 글은 날것 그대로 휘갈겨 내놓았던 자유로움.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미련한 착각에 짓눌려있지 말아야겠다는 작은 의지가 조금씩 되살아났다.








백설공주 이야기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이 난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어쩌면 왕자님의 바람기에 속앓이를 했을지도,

왕비가 되어서도 육아 스트레스와 왕실 내 권력 다툼에 우울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일곱 난쟁이를 만나고, 독사과를 먹었던 것처럼 극적인 이야기는 없었을지 몰라도

그녀의 삶은 매일매일 계속되었을 것이다.



<서른의 연애>는 서른셋에서 끝이 났지만, 나는 그 이후의 시간을 계속 살아간다.

살아가는 한 나는 이 삶을 글로 남겨놓고 싶다.

비록 길었던 연애의 끝이나, 독일로 날아갔던 그런 극적인 이야기는 없더라도 말이다.



서른다섯엔, 서른다섯의 글을.


죽지 않고, 내일을 더 살기 위해. 나는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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