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와이프랑 9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어요.
여자친구는 툭하면 "헤어져", 별 이유도 없이 "헤어져" 그랬는데 제가 잘 달래서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군대에 갔을 때도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하고, 점심 때 전화하고, 저녁 때 꼭 전화를 했어요.
입대 첫 날도 훈련소 들어가면서 공중전화가 어딨는지 잘 살펴놨다가, 그 날 저녁에 전화를 했어요.
훈련소에서 전화 어렵잖아요? 그래서 마치 부대 고참인 척 하면서 가서 전화를 했지요.
아침에는 거의 자면서 전화를 받았어요. 나중에는 전화 안 하면 왜 안 하느냐고 화를 내더라구요."
"그렇게 9년을 연애하고 나니까, 이제 '아, 이 여자는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잘 구슬르고 타일러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권태기도 빨리 왔어요. 결혼하고 1년 반쯤 지나니까 권태기가 오더라구요. 그땐 정말 심각해서 갈라설 뻔했어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가끔, 와이프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찍 퇴근하고 싶은 때가 있어요."
이제 막 신혼도 아니고, 결혼 한지 10년도 훨씬 넘었을 40대 초중반의 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보통 저 나이쯤 되면 부부 생활이 지루함을 넘어서, 마지 못해 같이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부서 간담회를 하면서 담담히 말씀하신 부장님의 사랑 이야기에 나도 잠깐 설렜다.
함께한지 20년에 넘었어도 아직도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떨린다는 말.
부서장이 와이프가 보고 싶어서 일찍 집에 가고 싶다는 말.
40대 초중반 남자에게서 나온 말 중에 그보다 '섹시'한 말이 또 있을까.
그 사랑이, 나도 조금은 닮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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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