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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Nov 15. 2015

08. 어느 부장님의 사랑 이야기



"저는 와이프랑 9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어요. 

여자친구는 툭하면 "헤어져",  별 이유도 없이 "헤어져" 그랬는데 제가 잘 달래서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군대에 갔을 때도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하고, 점심 때 전화하고, 저녁 때 꼭 전화를 했어요. 

입대 첫 날도 훈련소 들어가면서 공중전화가 어딨는지 잘 살펴놨다가, 그 날 저녁에 전화를 했어요. 

훈련소에서 전화 어렵잖아요? 그래서 마치 부대 고참인 척 하면서 가서 전화를 했지요. 

아침에는 거의 자면서 전화를 받았어요. 나중에는 전화 안 하면 왜 안 하느냐고 화를 내더라구요."


"그렇게 9년을 연애하고 나니까, 이제 '아, 이 여자는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잘 구슬르고 타일러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권태기도 빨리 왔어요. 결혼하고 1년 반쯤 지나니까 권태기가 오더라구요.  그땐 정말 심각해서 갈라설  뻔했어요."


"그런데 그 권태기가 지나고 나니까, 너무 좋아요. 그제서야 그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여튼 연애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저는 와이프가 너~무 좋고 막 떨려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가끔, 와이프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찍 퇴근하고 싶은 때가 있어요."






이제 막 신혼도 아니고, 결혼 한지 10년도 훨씬 넘었을 40대 초중반의 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보통 저 나이쯤 되면 부부 생활이 지루함을 넘어서, 마지 못해 같이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부서 간담회를 하면서 담담히  말씀하신 부장님의 사랑 이야기에 나도 잠깐 설렜다. 



함께한지 20년에 넘었어도 아직도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떨린다는 말. 

부서장이 와이프가 보고 싶어서 일찍 집에 가고 싶다는 말. 


40대 초중반 남자에게서 나온 말 중에 그보다 '섹시'한 말이 또 있을까. 



그 사랑이, 나도 조금은 닮고 싶어 졌다. 



(우리 부장님이 0.1 초간 요렇게 보였다. 0.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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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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