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 썼듯이(https://brunch.co.kr/@goodrain/6), 소개팅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난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팅 할 만한 사람 없냐고 묻는다.
아무리 사정없이 까이고, 때로는 시간이 아깝고, 소개팅으로는 좋은 사람 만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도,
다음 연애가 시작될 때까지 소개팅을 계속할 것이다.
왜냐고?
1. 친구나 지인에게 고백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학교나 직장, 공동체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이성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솔로가 되고, 뭐 이래 저래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참 괜찮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과 친구나 지인으로 별 탈없이 잘 지내고 있는 도중에 고백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짓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분위기도 잡아보려고 하고, 몇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약속도 잡고, 연락도 자주 하고 할 것이다.
아주 운이 좋다면, 간혹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 착각이 모든 실수의 시작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이성적 호감'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더 친한 친구'가 되었을 뿐이다.
여기서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고백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친구나 지인에게 고백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확률의 엄청난 성공(=연애)을 위해, 매우 큰 확률의 폭망(=관계의 단절)을 감수하는 행동이다. 지금껏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그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짐은 물론이고,
그 사람을 둘러싼 인간관계, 공동체 전체와의 불편함도 따라온다.
우리의 관계 범위라는 것이 넓어봤자 얼마나 넓겠는가.
그렇게 한 두개의 관계만 무너져도 나의 인간관계는 완전히 제한된다.
드라마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람과 어느 날 갑자기 분위기가 확 타올라서 로맨틱한 연인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 거의 없다.
지금껏 연애를 한 사람들은, 대부분 만난 지 2~3개월 내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경우이다.
그 '골든 타임'이 넘어갔다면, 절대 안된다. 흔들리지 마라. 제발. 이 멍충한 나님아!!
2.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이건, 이십 대 중반을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서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호감이 가는 이성이 없다고 직장을 옮기랴, 평생 다닌 교회를 옮기랴.
학원에서는 공부나 해야지. 괜찮은 사람 없다.
친구랑 한 잔 하는데 어쩌다가 부른 이성은, 또 다른 친구가 될 뿐이다.
물론 당신의 매력이 어마어마해서 만나는 이성들마다 당신에게 꽂힌다면, 뭐 굳이 많은 기회가 필요도 없겠지만.... 확실히 나는 그렇지 않다.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문제인 건가!!)
3. 최고의 스펙은?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취미는 무엇인지...
그런데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스펙은 바로!
그 사람이 '현재 솔로이고, 연애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스펙을 가진 사람, 생각보다 만나기 진~짜 어렵다.
그런데 소개팅에서는 놀랍게도, 가장 중요한 스펙을 갖춘 이성이 내 앞에 앉아 계신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나왔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라면,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만도 엄청나게 큰 기회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나는 여전히 소개팅을 하고 있다.
가끔은, 어떤 친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차라리 저 사람이랑 소개팅으로 만났으면 더 좋았겠다...'
20대 때는 몰랐다. 친구라는 이성들과의 관계가 오래갈 줄 알았다.
그래서 그냥 지금 좋으면 친구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되니 깨닫게 되었다. 그녀들과의 관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무리 친했던 친구도, 그녀가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후에는 친구라는 관계를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청첩장을 주는 자리에서는 쿨하게 "결혼하고도 보면 되지!"라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마지막으로 그녀를 아주아주 오래 못 볼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랑 오랜 시간 정말 친했던 친구가, 소개팅을 해서 몇 번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그때의 박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소개팅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소개팅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고, 그녀와 그간의 좋은 기억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옅어져 버릴 거라면,
더 깊은 관계로 나갈 수 있는 0.1%의 가능성에라도 부딪혀 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차라리 소개팅으로 만났더라면, 우리가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지만, 어쨌든 결론은 소개팅은 정말 좋은 기회라는 사실.
내가 누군지 듣고, 내 사진을 보고도 그 자리에 나와 주신 분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
혹시나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의 진면목을 눈치채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지!
그러니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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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