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셋, 겨울 넷
겨울 셋
그와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나는 나 힘든 걸 이 사람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겠구나.’
너무 많은 문제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는 그 안에서 의연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그 상황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내 기준에서 그 정도는 견딜 만한 것 같아도 그의 마음을 돌보며 열심히 들어줬고 그의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내가 힘들어 기대고 싶어 졌던 순간, 그는 이 정도도 이해를 못 해주냐며 화를 냈고,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 보다고 나를 질책했다.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는 자신의 어려움에 가득 싸여있었고, 나는 그걸 다 받아주기엔 내 어리광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가 미워지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내가 성숙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자신을 한없이 받아 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보여준 행동에서 그를 한없이 다정하고 포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지속될 거라 기대했다.
그저 우리는 각자 상상을 했고, 서로를 만들어갔고, 각자 기대를 했고, 서로에게 실망을 했다. 우리의 헤어짐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각자의 잘못이기도 했다.
겨울 넷
그와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설렘이어서 헤어짐이 길었다. 그리고 헤어지는 동안에 찾아온 건 분명 상실감이었다.
그러나 달랐던 건, 이 상실감은 그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아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떨어져 나간 내 반짝이던 마음 조각에 대한 상실감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상실감 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며칠을 뒤척이다 마음을 비우며 생각했다.
이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구나.
서른셋의 상실과 이별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쉬웠다. 납득이 되면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