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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래빗 Jun 25. 2020

'유예'가 밥 먹듯 이뤄지는 한국사회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아는가?

사람이 태어나면 시기에 따라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갓난아기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몸 뒤집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벽을 짚고 일어서야 하고, 스스로 걸어야 한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옹알이를 거쳐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제 때 제 역할을 못하면 부모는 걱정이다. 오히려 주변에서 더 걱정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는 거니까...


한국사회는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가 꽤 세다.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더 심해진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본격적인 입시가 이때쯤 시작되는 것이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기대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대학 입시 전까지 아이의 희망과 욕구 등은 대학 진학 이후로 '유예'된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간 '미뤄 두었던' 희망과 욕구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잘 알다시피, 대학에 들어가면 그다음 명확한 역할이 또 준비돼 있다. 번듯한 직장이다.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 공무원,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등등 사회가 선호하는 목표가 마련돼 있다. 이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학생들은 그 시기에 반드시 치러야 할 고민과 갈등, 경험들을 또 '유예'하곤 한다. (아!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요즘에는 졸업까지 '유예'하는구나..)


하나의 파도가 지나가면, 곧 또 다른 파도가 오는 게 인생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을 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결혼, 출산, 이직, 건강, 부양, 이별 등등 하나의 숙제가 끝나면, 또 다른 숙제가 어김없이 다가온다. 문제는 이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 그 시기에 필수적으로 치러야 할 고민과 감정, 욕구들을 계속 '유예'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40대가 돼서야 사춘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환갑이 다 됐는데 '자신이 도대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라고 고백하는는 사람들은 '유예'를 밥 먹듯 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얼마나 나를 잘 알까?'  카탈리나 섬이 보이는 팔로스버디스, 2016년 


'다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시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험과 감정도 있다. 한두 번이야 모르겠지만, 이걸 계속 미뤄둘 수 있을까? 미뤄둔다고 그런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일까? 언젠가 자신에게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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