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함이 범람하고
의문이 공간을 메워가면
발 디딘 이곳 혹한임을 되새겨본다
내쉬는 모든 말을 마디마디 얼려 부수는 땅
그 위에서라면 이 침묵 용인될지도 모를 테니
그러나 동시에 일순의 망설임도
동상으로 이어지는 경각의 땅
추위를 침묵보다 싫어했던
그대가 결국 참지 못해 입을 열면
두려운 나는 빙하 위로 도망치고
그대는 가련한 눈빛만으로 뒤를 쫓는다
연민의 온도를 견디지 못한 빙하는 틈을 벌리고
거대한 크레바스가 되어 나를 삼켜낸다
부패조차 허락 않는 냉기로
나는 그대를 바라본 채 동사하겠지
그대만을 바라보며 죽은 채 영원하겠지
영원한 시선을 약속받은 이여
그러니 그 시선 거두기 전
하나만 물어도 될까
나는 그대의 넓은 균열
그 어느 틈새에 빠졌던 사람이었나
<남극점>, 이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