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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Jun 14. 2016

잊힌 목소리

단편소설

   어느 지부에나 있을 법한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에서 내 기억은 시작된다.


   비가 그친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지면은 수분을 머금어 축축하고 하늘은 무채색으로 물들어 그 우중충함을 자랑하고 있다. 거센 바람이 이따금씩 몰아쳐 나뭇잎을 강하게 흔들, 그 모습은 마치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연상케 한다.

   걷는 이가 없어 한적하다 못해 황량한 산책로의 끝에는 행성 간 이동시에 사용되는 이동 항법장치로서의 워프게이트 형상을 닮은 고리가 세워져 있다. 스스로도 설명 못 할 이유로 나는 그 고리를 통과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막연한 당위성을 동시에 느끼고, 걸음을 멈춰 멍하니 고리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다. 나는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다 마치 그것을 위해 설계된 인공지능처럼 자연스레 행성의 종말을 머릿속에 그린다.

  

   천문학적 용어로 한 행성의 회전 속도가 고정된다것을 '조석 고정된다(tidally locked)'라고 부른다. 그것은 행성들의 기조력 영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회전을 멈추는 것이 아닌 인접한 두 천체 사이의 공전 주기와 자전주기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외계 태양계에 있는 대부분의 행성들이 조석 고정되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행성의 관점에서 조석 고정된다는 것은 그리 특이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곳에 머물고 있는 생물체의 관점에서는 생에 단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핵심은 천체의 한쪽 반구는 영원히 자기보다 큰 천체를, 그 반대방향은 영원히 상대 천체를 등지게 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조석 고정 대상이 수소 핵융합 반응을 하는 주계열성일 때 발생한다. 주계열성과 조석 고정된 행성의 계절은 영원한 낮과 밤으로 이원화될 테니까.


   우리 은하에 정체모를 행성이 등장했다는 소식과 함께 글리제의 회전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 속보가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리던 날로부터 몇십 년쯤 지난날이던가. 세계는 이미 영원히 안타레스 ¹ 를 마주 하는 불지옥과 그렇지 않은 빙하지대로 이원화되었으며 대양은 남극과 북극을 향해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오랜 시간 옮겨간 결과 바다가 사라진 적도 부근에는 거대한 대륙이 솟아나 있었다.

   내가 속한 곳은 영원한 빙하가 내린 지부였다. 영원히 안타레스를 마주 할 염화의 지부(─혹은 지옥)를 상상한다면 '옷을 껴입을지언정 빙하지대가 더 낫지 않을까'라고 나 이외에도 수많은 피난민이 같은 생각을 가졌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림자조차 잃어버린 그 대지 위에서 생존자들은 빛 없이도 생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피난민의 8할이 죽어나가는 죽음의 행군을 거치며 간신히 불지옥과 빙하지대의 중간지점까지 도착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내쉬는 숨조차 얼어붙는 저주받은 땅 위에서 인류는 그야말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미난 점은 재앙이 발생한 뒤 한 세기도채 지나기 전에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진화한 인류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최연소 지도자였다.


   당시의 인류로서는 스스로의 삶이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명 '하루살이'들이 속속 출현하던 실정이었다. 살인과 강간을 서슴지 않고 인육을 먹으며 연명하는 부류 말이다. 때문에 우리가 서있는 땅 위에서 개인이 개인을 마주친 다는 것은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생을 마감하고, 둘 중 하나는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그러한 하루살이들을 피해 하나둘씩 모인 최후의 '인간' 집단이었다. 얼어붙은 기름을 녹여 불을 지피고 방벽을 세운 뒤 경비까지 행하는 최소한의 방어책 덕택에 소수하루살이들로부터는 안전했으나, 그러한 방어책은 한 편으로는 하루살이들을 밀집시키 집단화시키는 역효과 또한 존재했다. 방벽이 뚫린 날은 많지 않았으나, 뚫리면 항상 지도자가 죽어갔다. 어쩌면 인류의 조상이 살았다는 행성 지구의 카미카제 정신이 하루살이들에게 깃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그들은 집요하게 지도자를 노렸다.  때문인지 세 번째 지도자가 침입한 하루살이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날, 더 이상 지도자에 지원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따라서 누군가를 다그 치는 이도 없었다. 아마 모두가 방벽의 와해까지 며칠쯤 남았을는지 가늠 따위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개안했음을 선언한 것은 바로 다음 날(이미 시간 감각을 잃어버렸지만ㅡ) 이었다. 모두가 어둠 속에서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진화시킨 동안 그녀는 눈을 감은 선택을 한 것이었고, 그에 따라 그녀는 기존의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내면의 제 3 안구를 개안한 것이었다. 그것의 증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개안하고, 지도자를 맡은 이후로 단 한 명도 죽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짧게나마 즉각적 죽음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나 안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안정은 동시에 더 거대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자각하는 데 일조하였다. 곧 안타레스와 완전히 조석 고정될 이 땅위엔 주계열성이 뿜는 죽음의 바람이 더욱 강렬히 불어올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량마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의 영토를 넓힐 수 없는 상황 상 그것 역시 치명적인 문제였으니 이러나저러나 죽음이 곁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루살이들보다 더 욕구불만인 상태를 흐려질 대로 흐려진 '윤리'라는 가는 끈 하나로 붙잡고 있을 뿐이었기에 우리 내부에서 언제 하루살이가 출현한다 해도 별다른 놀라움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연명하던 와중에 '그녀'가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녀의 막사는 없는 기름을 끌어모아놓은 탓에 우리 캠프 내에서도 가장 환한 막사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맹인에게 어찌하여 그런 불빛이 필요한지, 그녀의 눈동자를 본 적이 있는지 등 막연한 상상을 이어가고 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가까운 미래, 가까운 곳에 우주의 뒤틀림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그녀의 감긴 두 눈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신화 속 오작교의 모티프는 인간의 속눈썹 인지도 모르겠다는 방향성 없는 생각을 하, 나는 그녀에게 어째서 나인지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게... 무어라 말했던 것 같다. 이 부분만은 어쩐지 떠오르지 않는다.


   계획은 단순했다. 우주의 뒤틀림은 전에 없는 강한 빛을 뿜을 것이므로, 그것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와는 관계없이 '하루살이들을 뚫고 도달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녀가 장난을 치는 것인가 고민했지만, 그로부터 얼마 없는 식량이 내게로 집중되었고 동시에 나는 보초 근무조차 열외 되며 운동할 것을 명령받았다.

   그렇게 나의 체력과 공동체원들의 불만이 정비례로 증가하여 정점에 닿아갈 때쯤이었다. 우주의 뒤틀림은 생각보다 뚜렷한 징조와 함께 동반되었다. 글리제 인근에서 생성된 소형 블랙홀로 인하여 행성의 조석 고정 상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충격을 동반하였고 그 여파로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대로 몸을 내달렸다. 비명과도 같은 보초의 목소리가 울릴 때쯤 나는 이미 방벽을 넘어선 상태였다.

   우주의 뒤틀림으로 인한 균열은 생각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퇴화된 내 시각으로 정확하게 거리를 잴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으니까. 나의 육체는 지독히도 오랜 시간만에 열을 내뿜고 있었고, 거기엔 외부의 찬 공기가 곧바로 달라붙어 조상들의 초기 이송수단처럼 증기를 세계에 뿌려댔다. 하루살이들은 방향을 가리지 않고 내게로 덤벼들었다. 방벽 근처에 밀집하여 살고 있었는지 최초의 돌파 이후로는 전방에 위치한 하루살이는 드물었으나, 그것들은 내가 단 한순간만 멈춰도 잡아먹힐 것이란 것을 괴성을 내뿜으며 지속적으로 자각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내게 위협적이었던 것은 빛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가갈수록 강렬해야 할 빛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이유로든 균열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달리고 달릴 뿐이었다. 하루살이들의 괴성을 감지하던 청각을 필두로 나의 모든 감각은 사라져갔고, 두 다리만이 무한 루프를 명령받은 인공지능처럼 동작을 반복했다. 그렇게 달리고, 걷고 또 기어서 도착한 그곳엔... 무엇이 있었던가.


   눈가를 때리는 차가운 물방울에 다시 눈을 뜨고 발 디딘 세계를 맞이한다. 이전에 물방울을 맞아 본 적이 있던가. 모든 것이 억겁의 시간 그 이전의 일처럼 다가오고 있다.

  분명 내 기억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내가 억겁의 세월을 보내온 곳이고 좀 전의 한 행성이 회전을 멈춘 세상은 공상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쩐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진다. 논리니, 과정이니, 법칙이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내가 그것을 증명할 테니까.

   고개를 바로 세우고 다시 고리를 바라본다. 워프게이트이든 아니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저곳을 지나면 그 세계에 닿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세계의 그녀처럼 영겁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나 역시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새로운 질서가 내 몸에 세워져 있을 지도.

   한 걸음은 나를 고리 앞으로 데려가고, 두 걸음째에 나는 고리를 통과한다. 이윽고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에 내려앉고, 나는 잊힌 목소리를 듣는다.


나의 이름을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1) 안타레스: 태양과 같이 수소 핵융합 반응을 하는 주계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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