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 Dec 10. 2016

파도에 슬은 책 곰팡이

ㅡ아니, 학교에서 주는 수상실적도 별로 없는데 도서관에서 뭐 프로그램이라던가 하다못해 독서왕 맞네, 왜 독서경진대회나 백일장 같은 것들 있잖아요. 도서관도 이제 책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학생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ㅡ성진 어머님, 말씀하신 독서경진대회, 백일장은 이미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구요. 또 저는 교사가 아니라 사실상 행정실 직원에 가까워서 학생들 기록까지 영향을 줄만한...

ㅡ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 유진 씨... 아니, 사서님도 뭐 생각해두신 거 있을 거 아니에요. 이런 걸 하면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겠다... 뭐, 그런 거 준비한 거 없어요?

ㅡ그러니까요 어머님. 저는 말이 좋아 행정부 소속이지 사실 비정규직이에요... 학교 운영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그쯤에서 나는 문에서 귀를 떼어냈다. 집 안에서도 지긋지긋했던 이야기를 학교에서까지 듣자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학교를 나서면서부터 예견된 바였지만, 알고 있었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ㅡ오늘 수업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지 말고 학교 도서실 앞에서 좀 기다려.

ㅡ왜?

ㅡ사서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하게.

ㅡ나까지 있을 필요가 있어?

ㅡ있으라면 좀 있어, 토 달지 말고.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엄마의 추태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왜 이 사달이 났는가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마도 저번 주에 있었던 교사-학부모 면담 때문인 것 같았다. 2학년에 들어서면서 독서 관련 상을 타다 보니 담임이 그걸 성적표에 짤막하게나마 칭찬하며 적어 보냈는데, 엄마는 얼씨구 좋다며 그 상들로 학생부를 채울 계획을 멋대로 세웠을 것이다. 기분 좋게 받았던 상들이 막상 엄마에게 멋대로 사용되는 걸 마주하니 당장에라도 집으로 뛰어들어가 전부 찢어버리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엄마가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게 화가 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2학년이 되고 도서관이 있는 3층에 반 배정을 받은 채 개학 후 일주일쯤 보내던 어느 날, 친구들과 복도에서 뛰어놀던 도중 우연히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가 새로 온 사서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냥 자연스레 도서관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게 된 것이었다. 독서왕은 이유도 없이 도서관에 오가기 민망하다 보니 한 두권 읽던 책이 두 달 동안 50권이 넘어 받게 된 것이었고... 그리고 사서 선생님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제야, 이제서야 겨우 친해졌다 싶었는데 엄마가 저렇게 찾아와서는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이었다. 사서 선생님이 얼마나 곤욕스러울지, 그리고 이후로 나를 어떻게 볼 지를 상상하니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에 몸이 화끈거려왔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엄마를 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마침 엄마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문을 열고 나왔다. 

ㅡ그럼 선생님, 제 말 이해하셨으리라고 믿고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ㅡ네, 성진 어머님. 들어가세요.

   선생님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지만 어쩐지 내게는 선생님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빨리 떠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 믿으며 나는 엄마를 밀다시피 하며 도서관에서 내보냈다. 부끄러움에 돌아서며 바삐 머리 숙여 인사만 하고 떠나려는데, 선생님은 괜찮다는 듯이 양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해 문을 닫자마자 엄마에게 이게 무슨 추태냐고 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도서관 앞에서 한바탕 싸움을 했더랬다. 결국은 똑같은 레퍼토리에 똑같은 결말이었지만, 그런 내 목소리가 문을 건너 선생님께 사죄의 목소리로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심란한 상태로 주말을 지내고 나니, 도저히 도서관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아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던 도서실을 무려 며칠 동안 방문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빌려놨던 책도 이젠 다 읽어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옆 반에서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김경민이라는 여자애였는데, 사서 선생님을 가끔 돕던 독서부 학생이었다.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독서부에서 독서왕 인터뷰를 실어 홍보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나한테 혹시 인터뷰를 할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머리를 몇 번 굴려보고 이보다 더 나은 화해? 의 방문은 없을 거라고 확신을 내렸지만, 혹시나 사서 선생님이 내 표정도 살펴보고 오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막연한 공상이 들어선 정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는 석식 이후 잠깐의 자투리 시간을 통해 하기로 결정되었고, 그에 따라 나는 수업도 반쯤 흘려들으며 사서 선생님께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였으나, 정작 도서관 문을 열고 선생님을 마주하니 왠지 얼어붙어버려선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스스로도 한심해 고개도 못 들고 있는데, 선생님은 전과 다름없이 짓궂게 웃으시며 요 며칠간 왜 이렇게 뜸했냐며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하루 종일 안고 있던 고민이 녹아내리며 이렇게 기분 좋은 통증이 있었던가. 처음 느낀 모순적 감각에 그저 바보처럼 웃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한 인터뷰의 질문들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서관 한쪽에 딸린 세미나실에서 독서 부원 몇 명이 독서를 시작한 계기 라던가, 자주 읽은 책 혹은 추천하는 책 따위를 물어볼 따름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는 학교 도서관에 바라는 점을 물어왔는데, 나는 사죄의 마음을 담아 대출반납 기기와 분실방지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의 업무가 훨씬 쉬워질 거라고, 다시 생각해도 천재적인 대답이었다며 그 날 집에 돌아가며 거의 춤을 췄더랬다. 

   

   그렇게 2학년 1학기는 평화롭게 지나갔다. 결국 학기 중에 별다른 도서 프로그램이 생성되지 않아 기말고사를 엎마 앞두고서 엄마가 한번 더 학교 도서관에 찾아온다는 걸 가출 협박까지 하고, 도서관이 아닌 교장실을 찾아가라며 때를 박박 써서 막아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책만 읽느라 성적이 떨어져서 방학 내내 하루 종일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방학 중에도 도서관에 가려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그저 엄마를 막아냄으로써 사서 선생님께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하고 나는 조용한 여름방학을 보냈다.


   아스팔트를 녹일 정도로 유난히 무덥던 여름은 그렇게 시간도 녹여버렸는지 그렇게 한 달하고도 반쯤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몇 없는 학교의 나무에도 단풍이 들었고, 학생들은 각자가 체감하는 바에 따라 하복과 춘추복을 섞어 입고 있었다.

   새 학기의 별미라는 제비뽑기 짝 바꾸기도 별 관심 없이 지루하게 보내고, 조례 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별로 춥지도 않았지만 굳이 꺼내 입은 춘추복과 넥타이를 문 앞에서 점검하고, 아마도 남들이 제비를 뽑으며 가졌을 설렘을 품으며 문을 열자, 익숙지 않은 적막함이 나를 반겼다.

   방학 내내 찾지 못했던 도서관은 무언가 많이 변해있었다. 선생님은 잠깐 어딜 가셨는지 보이질 않고, 내 키만 한 분실방지기와 마치 나를 맞이하는 듯 정문에 놓인 대출반납기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해서 이것저것 만지고 있자니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님인가 하고 재빨리 돌아보니 저번에 인터뷰하며 보았던 독서 부원이었다. 김경민이라고 했던가? 별생각 없이 대충 눈인사를 하고 선생님은 언제 오시나 여기저기 훑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애가 선생님이 앉던 입구 관리대에 털썩하며 앉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부원들이 원래 저랬나? 못 본 것 같은데... 오만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쉬는 시간이 거의 다 지나 나는 나가는 김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혹시 사서 선생님 어디 가셨는지 아냐고 그 애에게 물어보았다.

ㅡ선생님 그만두셨대.

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변성기에 접어든 목젖이 미세하게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ㅡ왜...?

   그 애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 끝에는 내가 조금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대출반납기가 있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나는 사고가 정지된 상태로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그 최신형 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되물었다.

ㅡ저게... 왜...?

    그 애는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아마도 뭘 그런 걸 묻냐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ㅡ필요 없으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 애는 이것저것 챙기고선 도서관을 빠져나갔고, 나는 혼자 남아 멍하니 관리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도서관을 다시 찾은 건 그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수능을 몇 달 남겨두고서였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학작품을 읽어두려고 문학책 몇 권을 빌릴 생각이었다. 그즈음 난 하루 종일 공부만 할 뿐이라 별다른 사고 자체를 하지 않았으므로 도서관까지도 별생각 없이 걸었으나, 입구에 도착해 문을 열려니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에 동작을 멈췄다. 씨끌벅적한 복도에 오롯이 나만 격리된 느낌. 귓가에 들어오는 소리는 모두 멀어지고, 심장박동은 손 끝에서 느껴졌다. 어느새 꽉 쥔 반대쪽 주먹에선 땀이 스미고, 숨은 의식적으로 쉬어야 했다. 눈까지 감으니 그야말로 모든 것이 아득했다. 그 속에서 나는 분해되고, 분해되어 입자 단위로 나눠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 찰나,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기에 다시 나는 눈을 떴다. 길을 비켜달라는 거겠지.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짤막한 한숨을 내쉰 뒤 문을 열었다.

   도서관은 그 날 이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화분 몇 개 정도와 책상의 위치 정도일까. 그러고 보니 전의 그 독서 부원 대신 다른 학생이 관리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언젠가 저 자리의 학생에게 봉사활동 시간을 제공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런 걸까. 잠시 그곳에 앉은 학생을 바라보다 책을 찾으러 나섰다.

   걸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별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 애썼으나, 문학도서란에 이르자 그런 노력도 별 쓸모가 없어졌다. 아무리 속독을 했다 한들 표지는 변하지 않는다. 일 년 내내 도서관에서만 살았으니 안 그래도 몇 없는 학교 도서관의 책들은 대부분이 이미 익숙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도 모르게 그것들을 쓰다듬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까끌까끌한 감촉들이 손결을 따라 춤을 추었고, 나는 또다시 멀고 깊숙한 어딘가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대출반납기 앞에 선 것은 종소리가 울리고 그에 따라 황급히 떠나는 발소리들이 울린 뒤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책을 찾아 기계 앞에 섰으나, 그곳에서 나는 다시 아득해졌다.

   선생님이 떠나고 난 뒤 나는 차마 엄마에게 혹시, 정말로 교장실을 찾아갔느냐고 묻지 못했다. 만일 엄마가 찾아갔고, 그래서 선생님이 떠난 것이라면 내 죄책감이 반쯤은 덜어졌을지도 모른다. 반쯤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온전히 내 탓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나는 상상만으로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출반납기는 화면의 글자를 누르면 작동하는 최신식 터치스크린 방식이었다. 대출이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누르니 책을 올려달라는 여성의 기계음이 울렸다. 누군가 손톱으로 칠판을 그은 듯 그 거북한 음성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왜 이런 기계는 하나같이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인지, 불만스러움을 담아 책을 올리니 마치 기계가 책을 먹는 듯 자신의 내부로 가져갔다. 바코드를 인식하기 위함인 걸까. 곧 화면에 내가 빌린 책과 대출 확인 버튼이 떠올랐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마지막 작업을 위해서인지 위잉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기계는 이제 무슨 말을 할까. 완료되었습니다? 대출되었습니다? 반납기한은 언제까지 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뭐라고 했었더라.

   그 순간 위잉거리는 소리가 멈추더니, 대출되었습니다.라는 기계음과 함께 책이 다시 뱉어지듯 기계로부터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책이 기계의 침에 흠뻑 젖어있을 것만 같은 망상에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하고 있는데, 때마침 선생님의 목소리가 기억이 났다. 대출됐어. 그래, 대출됐어. 끝을 조금 끌면서 반말을 하셨었지 참. 그제야 나는 손을 뻗어 책을 집었다. 물론 기계의 침 따위에 젖어있진 않았는데, 그랬는데. 어쩐지 바다 위에 떠있는 듯 책이 넘실거렸다. 잔잔한 물결은 곧 파도로, 해일이 되어 덮쳐왔고, 준비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곳에 휩쓸려 그만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파도에 슬은 책 곰팡이 냄새가 흉부에 스며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잊힌 목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