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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 Magazine Aug 03. 2021

글 쓰는 일이 아닌, 책 만드는 일.

<책 만드는 일>, 민음사(2021)는 즐거운 충격입니다.




  “두 개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갖는 것과 같다”



  샤를마뉴 대제의 말입니다. 이전에 블로그를 준비하며 미디엄에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한국어 콘텐츠가 가질 메리트가 크지 않으리라 판단했던 때 우연히 접한 문구였어요. 같은 내용의 콘텐츠여도 영어로 작성되었을 경우 훨씬 많은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겠다 싶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 트위터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만든 블로그 플랫폼 Medium.

이 글이 적힌 브런치의 미국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1. 역자와 편집자



  그런 의미에서 책의 역자와 편집자는 모두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비교적 영어와 친숙한 비영어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원서를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영어뿐일까요. 세계 곳곳의 언어로 쓰인 훌륭한 글은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이러한 문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이 ‘문익점들’은 미지의 것을 기지의 것으로 만듭니다. 닿기 어려운 것을 충분히 만지며 즐길 수 있는 위치에 놓아줍니다.



  이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책의 뒤, 혹은 옆에 서 있는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엮습니다. 작가의 인터뷰를 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고 애당초 책이 곧 작가의 생각을 담아놓은 것이기에 우리에겐 이미 친숙하죠. 작가를 선별하고 이래저래 조물딱거려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편집자는 오히려 생소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직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양지에 있는 작가의 그림자를 편집자라고 하면 괜찮을까요.






2. 문학에 대한 오만과 편견 - 문학은 비문학이다



  기본적으로 문학과 비문학 중 고르라고 한다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비문학을 고르는 사람에게 민음사는 각별한 관심을 쏟아야 하는 출판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멋지고 대단한 출판사임에는 의심의 여지 또한 없지만요. 그렇게 문학을 점점 멀리하던 찰나 이곳에 함께 기고하고 있는 동료가 이 책을 읽던 중 몇몇 페이지를 슬쩍 보여줬습니다. 강한 꽂힘과 함께 구미가 확 당겼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모두 책을 좋아하며 창작자보다 편집자에 마음이 더 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문장들이었거든요.





  책을 펼치자 보인 “펴내며”부터 비문학 신봉자는 완전히 무장 해제됐습니다. 기분 좋게 짧은 이 책을 2페이지 정도 읽자마자 문학에 대한 경계심은 사그라들었어요. 살아 숨 쉬는 문장을 쓰려면, 일렁이고 출렁거리는 문단을 적어내려면 문학 독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구나 싶었습니다. 인문서나 실용서가 특정 분야의 지식을 위한 양식이라면 문학은 정신을 살찌우는 고급 요리라고 생각해왔으나 마냥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글쓰기”라는 카테고리를 위한 양식이었습니다 문학 독서는.




3. 편집자는 그림자가 아닌 태양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말입니다. 비문학을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글, 문학을 이야기를 전하려는 글이라 부른다면 당연히 후자 쪽의 문장들이 더 짜임새 있고 아름다울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 2,700원짜리 책을 읽으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사여구가 쓸데없이 덧붙인 표현이라면 미사여구는 제가 문학을 싫어했던 이유가 아닙니다. 쓸모없이, 저자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만 같은 문장은 문학과 비문학을 가리지 않고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적지 않은 문학 작품들이 가진 화려함이라고 해야 하나. 담백한 문장마저도 의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책을 덮고 싶어집니다. 혹은 비유 등의 표현을 남발해 문장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만들 때도. 이 책에도 그런 표현이 적지 않았고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라는 익숙한 결과물의 비하인드는 충분히 신선했고 편집자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는 이점도 컸다. 짤막한 여러 글이 모여있기에 빠른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만만치 않습니다. 쑥쑥 넘어가며 읽기 좋더라구요.



  책을 펼치며 동시에 편견을 깨준 이 책은 유의미합니다. 창작자라서 할 수 있는 일과, 편집자라서 할 수 있는 일 모두 진심으로 가치 있습니다. 그래도 제겐 역시 편집자가 창작자가 되는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해요. 책을 닫으며 동시에 확신을 심어준 이 책은 유의미합니다. 편집자는 창작자의 그림자가 아닌 창작자를 비추는 태양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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