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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Sep 09. 2016

치앙마이의 일곱 시는 조금 특별하다.

어둠은 눈 깜짝할 새



일곱 시. 9월의 치앙마이의 일곱 시는 조금 특별하다.

일곱 시면 해가 지고, 일곱 시면 지내고 있는 아파트의 수영장이 문을 닫거든.


둘을 더하면 해지는 분홍빛 하늘과 수영이 짜잔하고 등장한다. 단연 놓치고 싶지 않은 치앙마이에서의 내 하루 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서, 다들 해가 지기도 전에 자리를 비우고 떠난다. 그럼 나는 아무도 없는 너른 풀에 누워서 참방참방 수영을 한다. 그때 태양은 더 붉어지고, 하늘은 진한 분홍으로 물들고, 나를 품은 수영장 물까지도 덩달아 붉은빛으로 일렁인다. 세상에!


혼자 연습 중인 돌고래 수영도 하고, 자유영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고, 물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물 표면을 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다가 하늘을 본다.


멍- 하니.


해가 질 때의 하늘은 유난히 예쁘다. 색만 예쁜 게 아니다. 구름도 햇살의 다른 온도를 눈치챈 듯 겹겹이 쌓여 하늘을 더 넓고 높게 만든다.  가늘고 긴 구름, 풍성한 구름, 유난히 하얀 구름, 푸르스름한 구름. 안녕? 너희도 태양을 배웅하러 나왔니?



앞 건물에서 전구를 밝혔다. 한순간에 짠 하고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아직은 해가 떠 있어서 건물을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 일찍도 불을 밝힌다 싶지만 실은 지금 불을 켜는 게 옳다. 어둠은 눈 깜짝할 새에 스며드니까. 어두워진다 싶다가, 일어나야지 하고 정신을 챙기면 어두컴컴해져 있기 마련이거든.


어릴 때 집에서 가게를 할 때, 간판에 불을 켜는 건 내 몫이었다. 거실에 <간판>이라고 스티커가 붙은 스위치를 켜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난 늘 까무룩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밤이 진짜로 찾아오면 '앗' 하고 달려가 불을 켰다. 그럼 늦은 거다. 은근한 밤이 스며들기 전부터 간판은 반짝이고 있어야 하니까.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 외국이었던 것 같아. 처음엔 그 장면을 보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억지스럽다고. 이 장면이 좋지만 어떻게 혼자만 있는 밤의 수영장이 있냐고. 그래도 또 좋다고. 마음속에 담아둔 장면이었는데 이제 내가 혼자 수영장에 있다. 좋아하는 풍경을, 장면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사실이 된다. 마음에 새겨진 그림 한 조각을 꾸준히 따라간다. 그러니 좋은 것들을 많이 봐야 해.



그 당시에 나는 수영도 못했었지.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더욱이 시간의 흐름이 생생히 느껴진다. 그때와 지금의 나 사이에 하와이가 있고, 그로 인해 만난 사람들이 있고, 뭉게뭉게 생각나는 추억들이 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물이랑 친구를 맺었다. 수영을 배우려고 한 건 아니지만, 물에서 매일매일 놀다 보니 몸이 스스로 물을 익혔달까. 그랬더니 사람들이 "수영을 잘하네" 하고 말해줬다. (으쓱으쓱) 그래도 아직은 몇 번 수영장을 왔다 갔다 하면 바로 망가지는 실력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물이 너무나 좋고, 앞으로도 쭉 물에서 놀 테고 그럼 자연스럽게 내 몸이 알아갈 테니까.  



오빠가 그랬다. 수영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물이랑 친한 거라고. 그럼 언젠가 틀림없이 잘 하게 된다고. 오늘의 결심. 돌고래 수영을 멋지게 잘하는 섹시한 서른이 될 테다!







* 주인공이 수영을 하는 영화의 제목이 기억나질 않아요. 주인공은 고바야시 사토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수영장>이란 영화는 치앙마이가 배경이네요. 우연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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