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를 품고서
아직도 기억나는 영어 문장이 있어. 대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보내는 단기 봉사활동 면접을 보려고 외웠던 건데 어째 요즘 생각이 나. 영어 면접이 있다는데 그 때가지 영어 실력을 급성장시키기는 무리가 있겠더라고. 가고 싶기는 정말 가고 싶은데. 어디다 물어 볼 데도 없었고 물어볼 생각도 못했어. 그냥 종이에 내가 영어로 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을 썼어. 그리고 달달 외웠지.
I'm a happy person.
Because I know what I want to do
and I'm trying it now.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면 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고
지금 그것을 시도하고 있으니까요.
일년 전 그 면접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절실했어.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지. 생각해봐. 23살의 대학생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이야기 한다면. 누구라도 뽑고 싶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외국을 나갔어. 열 댓명의 팀원과 매일 부대끼며 함께 보내는 2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다른 것, 다른 문화에 매료되기엔 충분했지. 어느 정도 였냐면, 다른 팀원들은 현지 음식을 못 먹어서 고생하는데 나는 현지 애들이랑 친해져서 몰래 길거리 음식을 사다가 낄낄거리며 먹을 정도 였어.
늘 생각했어. 세상을 사는 방식이 하나일리는 없다고. 때가 되면 해야 할 일이 정해져있는 한국에서 나이를 먹을 수록 나는 답답함을 느꼈어. 그리고 생각했지.
우리가 태어나는 이유는 뭘까?
뭘까? 우리는 왜 태어나는 걸까? DNA에 아로새겨진 대로 자식을 번식하기 위해서? 그게 다라면 슬프잖아.
각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 오빠는 그랬어. "수진아, 나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생각해." 아름다운 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게 우리 오빠라 참 다행이다는 싶었어.
'왜 태어 났을까'라고 질문하기 시작한 건, 남들 처럼 사는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야. 왜 나는 남들과 다를까. 남들 처럼 사는게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정해진대로 살아야 한다면, 내가 나인 이유는 뭐지?
여행을 끝내고 돌아 온 지금의 대답은 이거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려고 태어났어.
나를 완성하기 위해 살아 있어.
그러니까 나의 삶을 살면 돼. 남의 삶을 탐내지 않고, 따라가지 않고, 내 마음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쫑긋 귀를 귀울이고서 '응, 그랬구나' 맞장구쳐 주면서 내 삶을 완성해 가자.
프리디리히 니체가 그랬어.
춤추는 하나의 별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내면에 카오스를 품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해도, 이상한 사람인가 스스로 묻게 되더라도, 내 마음 속에서 원하는 일이라면 나는 해보라고 힘껏 응원해 주고 싶어. 카오스를 품고 살자, 우리.
태양을 좋아하는 나는 나에게 말해.
스스로 빛을 내뿜는 하나의 태양이 되자.
그래서 행복하자.
*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이라는 존재에 끌려요. 수년 전에 받은 태국 이름은 '따완' 입니다. 태국어로 태양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햇살 아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