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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Sep 06. 2016

비 오는 날의 로망

여름이었다.



오랜만에 근처 카페에 왔다.

혼자 살면 좀 더 부지런히 살아질 줄 알았건 만.

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나가자고 제안하고 거절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매일 아침 반복해야 할 줄이야.



인터넷이 되는 카페에 앉아 타이 밀크티를 쪽쪽 빨아 마시면서 방콕 호스텔을 둘러봤다.

인터넷이란 참 요물인 게, 직접 가서 봤으면 당장에라도 '좋다', '머물겠다' 했을 숙소도 다시 보고 다시 보니 뭔가 모자라 보인다. 눈은 한없이 높아지고. 결국 두 시간 동안 숙소를 정하지도 못했다. 이럴 바엔 한 달 전에 묵었던 방콕의 숙소로 가면 되지 않겠냐, 또 다른 내가 제안하지만 여태 쓴 시간이 아까워 그럴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집에 가서 한 숨 낮잠이나 잘까 하고 고개를 들어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참, 태국은 우기였지. 조금 젖더라도 일어날까 하는데, 때마침 그 마음이 싹 사라지게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작고 아늑한 카페에 갇혀서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좋다. 적당히 어두컴컴해진 낮 하늘, 젖은 도로를 달리는 툭툭이, 한 데 모여 쏟아져 내리는 지붕의 빗물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오늘은 청소 서비스를 받았으니 깨끗한 방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다. 한 방울도 젖지 않은 채로 바라보는 비 오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 몸이 더 산뜻해지는 기분이다. 금방 그칠 비라는 걸 알기에 하나도 조급하질 않다. 태어나고 자란 기후와 흙의 냄새가 그 사람을 결정짓는다 그랬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하고 혼자 끄덕인다. 한국에선 비가 오면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쏟아지는 비는 쉽사리 멈추지 않으니까. 하루 종일 아니 밤새도록도 내려 홍수가 나곤 하니까. 오늘은 급할 것 없다. 가야할 곳도 없고 이 비는 금방 그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이 이야기를 하려고 돌아온 건지 모른다. 나는 비 오는 날의 로망이 있다. 우산을 가지고 누군가 마중을 나오는 것. 중학생 꼬꼬마이던 시절, 비 오는 날의 추억이 그렇듯 그 날도 여름 었다. 장맛비가 쏟아졌는데 집에 가는 시간이 돼서도 비는 멈추질 않았다. 누가 우산을 가지고 왔을 리도 없고, 친구들과 비를 맞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냅다 뛰어 집으로 갔다. 홀딱 젖은 채로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없었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는데 한참 뒤에 돌아온 엄마는 '와있었네' 하고 웃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우리 학교 정문에서 나를 기다렸단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날로 돌아간다. 후문으로 친구들과 냅다 뛰어가지 않고, 엄마가 있는 정문으로 가려고. 비가 내리고 우산을 든 엄마들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거기에 내가 사랑하는 울 엄마가 나를 위해 서있다. 비가 오니까. 나 젖지 말라고.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나는 자꾸만 그 날로 돌아가 눈으로 엄마를 찾고, 엄마를 발견하고, 함박미소를 짓고는 비를 맞으며 엄마에게 뛰어가고, 엄마는 자기 우산을 내주면서 비를 피하라며 우산 안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나는 빗소리에, 엄마 냄새에, 엄마가 여름이면 줄곧 입는 꽃무늬 원피스에, 내 몸에 닿는 익숙한 엄마의 살이 너무 좋아서 방방 뛰면서 집에 돌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분식점을 엄마에게 조잘거리며 알려주고 지나가는 친구들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매일 걷는 하굣길을 날아서 집으로 간다.  



내가 기억하기로 울 엄마는 비 오는 날 딱 한 번 우산을 갖다 주러 학교에 왔었다.

그래서 난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이제 난 머리가 다 커버려서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도 많이 하고, 엄마더러 나한테 신경 끄라고도 하고. 걱정 많은 엄마인 걸 알면서도 하루에 한 번 연락도 안 하는, 혼자 쿨 내 풍기는 매정한 딸이 됐다. 그 딸은 여행 떠나온 지 2년 차에, 비 오는 날 엄마를 생각하며 글을 주저 린다.



이번 추석은 엄마와 함께다. 엄마한테 폭 안겨서 살 냄새를 맡으면서 보내야지. 맛있는 걸 잔뜩 나눠 먹으면서 그만 먹으라고 구박하면서, 이제 제발 먹으란 소리 좀 그만하라고 배부른 소리를 하면서 그렇게 추석을 보내야지.






아 엄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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