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있겠지
여행을 떠난 지 2년, 이제야 쓰는 늦은 여행일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불안한 마음이 가득 들어차던 그 순간, 그럴 때 마다 나는 도서관에서 맘에 드는 여행 책들을 잔뜩 빌려왔어. 여행 책을 읽다보면 맘이 꼭 맞는 친구랑 수다를 떠는 것 처럼 즐겁고 맘이 편해졌거든.
맞아. 맞아. 맞장구 치면서.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떠난 당신도 참 대단하구나. 나도 할 수 있겠다. 응응 할 수 있어. 당연하지.
하고 싶은 일 쯤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잠시 멈춰 살아도 된다고, 놀고 싶을 땐 실컷 놀아봐도 된다고. 그래도 이렇게 즐겁게 살아진다고 다들 말해줬어. 물론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있겠지. 그치만 난 50인치 쓰리디 티비가 있어야 행복하거나 티파니 반지가 있어야 행복할 것 같다거나 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물질적 행복 마지노선이 없어.
내 행복은 대부분 햇빛에 출렁이는 나뭇잎을 볼 때, 이리 저리 둘러봐도 온통 바다만 펼쳐져 있을 때, 쏟아지는 비를 고대로 맞고서 젖은 채로 낄낄 거리고 뛰어다닐 때때 커지더라고. 그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물론 행복은 배가 되겠지만, 혼자 서는 법을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다야.
내가 갖고 싶은 것 들.
이 세상에서 내가 놓치지 않고 싶은 것.
어쩌면 내가 아닌 모습으로 오래 살아 온 것 같아. 한 겹 한 겹 가면을 벗겨내고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덜렁 거리지만 사랑이 많고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내 모습을 더 사랑할 거야.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두려울 필요가 없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잠깐 귀를 닫을 거야.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나만 바라보고 나를 위해서 살 거야.
하고 싶은 거라면 다 할 거야. 안전빵 따위 뜯어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지 않을 거야. 뭔가 되려고, 뭔가 이루려고 하는데 집중하지 않을 거야.
내가 되고, 행복할 거야.
자발적 백수가 된지 어언 2년, 물론 물질적으로 풍-족 하진 않지만 일하던 시절 모아둔 돈으로 아직도 잘 놀고 있어.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좀 더 모나졌고, 둥글어 졌어. 어영부영 넘기던 일들엔 모나졌고 (내 의견을 피력하게 되었고), 성내던 일들엔 관대해졌달까. 이거 왠지 잘 못 된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그렇게 자라는 거라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걸 억압해서 몰랐던 거였다고, 자라는 과정이라고 오빠가 설명해줬어. 그래서 안심하고 더욱 내가 되어 보려고 해.
당신의 행복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