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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Jun 14. 2017

어이쿠, 돈 많이 모았나 보네?

잘 지내? 네. 곧 관둬요. 세계 여행 떠나려구요.





여행을 떠나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만 해도 막 심장이 간질간질하고 그래? 여긴 내가 속한 곳이 아닌 것 같고 떠나기만 하면 뭔가 인생을 바꿀만한 일이 짜잔- 일어날 것 같구? 어떻게 아냐구? 내가 딱 그랬어. 먼 곳에서 휘몰아치는 그리움 탓에 정신을 못차리고 살았어. 정신을 차려보니 어찌어찌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도 했더라. 그래도 떠나고 싶어서 안되겠더라고. 엄마는 너만 왜 적응 못하고 놀고 싶어 환장했냐 그랬지만 나가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리겠더라구. 그 때 내 나이 스물 여섯, 딸린 몸 없을 때 평생을 절절히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며 살았던 드넓은 세상을 보고 오기로 했어. 걱정많은 울 엄마한텐 그랬지. 엄마, 1년만 딱 제대로 놀고 정신차릴게요. 그런데 그 여행이 3년이 걸렸어. 돌아온 지금도 엄마 표현에 의하면 정신 못차리고 떠나고 싶어 안달이야. 그치만 나라고 비행기 표 끊고 휙 떠날 수 있었던 건 아니야. 숱한 방황과 고민을 했지. 떠나고 싶은 니가 혹시 되풀이할지도 모르는, 그래서 너에게 혹여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나랑 비슷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볼까 해.



수진, 요즘 잘 지내?

= 네. 잘 지내요.

뭐 별일은 없구?

= 아. 저 이번 달까지 다니고 회사 관두기로 했어요.

엥? 왜? 잘 다니는 줄 알았는데? 좋은 회사잖아. 딴데로 가는 거야? 결혼해?

= 그런 건 아니구요. 여행 좀 가려구요.

여행? 관두고? 얼마나?

= 네. 좀 길게 가려구요. 일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야. 대단하네. 돈 많이 모았나봐?



여행을 간다고 말하고 나면 이 대화가 무조건 이어졌어. 정말 무조건 무조건이야. 정말 똑같은 대화를 얼마나 많은 사람과 했는지 몰라. 이쁘다는 말도 계속 들으면 질린다는데 '돈을 얼마나 모았냐'는 질문을 계속 받으니까 나중에는 내가 엄청 예민해지더라구. 생각해봐. 대학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모아봤자 얼마나 모았겠어? 억을 모았겠어? 금수저도 아니고 말야. 내가 새벽까지 야근하면서 학자금 대출 다 갚고 허리띠 졸라 매고 모았는데, 남들은 그러는 거야. 이야 돈 많나봐? 이러니 내가 빡쳐 안빡쳐? 그래서 실 웃으면서 그랬어. "아 뭐 그냥 모았어요. 그냥 적당히 ^^"


근데 말이야. 지나고 보니까 그게 정답이더라.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서 진짜 죽을 것 같았던 그 때, 도대체 얼마가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얼마를 모아야 하는 걸까? 하는게 내 최대의 관심사였는데 정답은 숫자가 아니었던 거야. 어디가서 밥 굶지 않고, 남에게 혹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하고 싶은게 생기면 해볼 수 있을 만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나에게 적당히! 알맞게! 그게 내게 맞는 답이었더라구.


세계를 다 둘러보는게 아무리 내 꿈이래도 평생 모범생으로 산 내가 남들 다가는 길에서 벋어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만약 너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힘내! 이겨낼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밖에 없어) 나는 딱 3,000만원을 모으고 떠나기로 했어. 하루 대충 10만원이면 여행 하겠지. 그래서 남으면 한국와서 재출발 해야지. 하고 그냥 쉽게 계산했어. 그래서 그 돈이 딱 모이는 3월까지만 다니기로 맘 먹었지.


그런데 말이야. 사람맘이 참 간사한게 사직서 내기 전에 자꾸 이런 맘이 들더라. '이왕 다니는 거 몇달 더 일하는게 낫지 않아? 그럼 몇 백을 더 모을 수 있을 텐데. 그럼 몇 달 더 여행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그노무 '몇달 더 여행할 수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자꾸 나를 붙잡고 늘어졌어. 근데 그렇게 해가지곤 끝을 못 맺겠더라고. 그 몇달이 몇년이 될 줄 누가 알겠어? 그래서 사직서를 딱 제출했지. 퇴사 사유 : 세계여행!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몇 백'에 혹했던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안전빵을 계속 뜯어먹고 싶었던 거지.


누구는 26유로를, 300만원을, 4000만원을 들고 세계여행을 나가. 세계여행 평균 경비라는 것 만큼 무의미 한 것도 없는 것 같아. 서울에서만 해도 그래. 10만원짜리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800원 짜리 컵라면으로 떼울 수도 있잖아. 내 주머니 사정에 맞게, 내 돈벌이에 맞게, 알맞게 모아서 쓰는 거지. 나는 정말 기깔 나게 아껴썼으니 이젠 잘 쓰기로 했어.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니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 하면서 말이야.


나는 회사를 다닌 3년 동안 한달에 100만원씩 저축했어. 공과금, 집세 이런거 다내고 어쩌고저쩌고 나면 1년 차에는 용돈으로 30만원 밖에 안남더라. 그래도 그렇게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구. 3천만원이 모이는 시점에 딱 맞춰서 퇴사를 했어. 근데 세계 여행 전에 엄마랑 그리스 여행가고 몽블랑 원정가고 하느라 8백만원을 여행 전에 썼어.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무려 3년을 여행했지. 물론 캐나다에서 워홀을 하면서 몇백만원 보충을 하긴 했지만.


돈이 가장 발목을 잡을 것 같지만 세계여행이란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진 않더라구. 이젠 알아. 왜 사람들이 얼마를 모았냐 그렇게 물어봤었는지. 어쩌면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둔게 아닐까 싶어. "어유.. 나는 여기저기 들어갈 곳이 많아" 하고 말이야. 근데 그 사람들이 겁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냐. 우선 순위가 다른 거지. 나에게 1순위가 여행이었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10순위 100순위 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웃긴건 여행 끝에 친구가 회사를 관둔다고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하게 됐다는 거야. "돈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놔." 나 너무 현실적이 되버렸나, 싶기도 하지만 여행에서 다른 것을 배운 덕분이야. 나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정해둔 루트에서 벗어나는게 더 이상 두렵지 않거든.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보고 왔으니까. 대신 어느정도의 자본금이 있으면 좋다는 걸 함께 배운 거지.


돈 때문에 전전긍긍 하진 마. 2,200만원으로 3년을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곤 나도 떠나보기 전까진 몰랐어. 여행길에선 각자의 이야기가 생기고 새로운 인연이 이어지니까. 떠나고 싶은 너에게 돈이 발목 붙잡는 일은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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