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물어봐. 참 쉽죠?
막상 직업도 없고, 여행만 떠나면 된다니까 너무 불안해. 백수가 되서 불안한 건지, 내 선택이 걱정이 되서 불안한 건지. 보통은 될대로 되라 주의인데 걱정이 되기 시작하니까 적응이 안되서 더 불안해. 내가 오불당 카페를 통해서 나랑 비슷한 시기에 세계 여행을 나가는 사람들도 모았고, 주변의 여행 전문가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청하는 메시지를 잔뜩 보냈다면 정말 불안한 거겠지.
얼마전 참석한 모임에서 그랬어. 사람은 하나의 "책"이라고. 그러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에서 찾아보고 그래도 부족하면 "인간책"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도움이 필요할 땐 혼자서 끙끙대지말고 도와달라고 말하면 돼. 정말 쉬운데 정말 어려워.
아직 이렇다할 구체적인 일정이 없는지라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다녀왔거나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라면 내가 뭘 말하는지 알거라 생각했어. 내가 모르는 건 당연하지. 그래서 떠나는 거니까.
여행을 자주 다닌 언니에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더니 언니가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지. 도시인지 나라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가보고 싶은 곳을 다 떠올려 본거야.
인도, 로마, 그리스, 태국, 우유니사막, 알라스카, 하와이, 베를린, 뉴욕, 모로코, 발리, 파리, 호주, 터키, 브라질, 런던, 스위스, 독일, 체코 정도요!
그랬더니 멋진 여행책인 언니가 이렇게 답장을 보내줬어.
수진, 일단 말해주고 싶은 건 이거야.
여정 순서를 정할 때, 너는 여유가 있으니까 각 나라 중에 특히 계절이 중요한 곳을 찝어서 큼직하게 순서를 정해봐. 그리고 사이사이에 계절이 별로 상관 없는 곳들을 넣는거지.
예를 들어 우유니 사막은 여름, 우기일 때 가는게 좋으니까 우리나라의 겨울.
인도도 계절이 정말 중요해. 인도도 겨울이 좋은데 왜냐면 겨울엔 북쪽은 못가도 남쪽은 갈 수 있거든. 여름엔 반대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남쪽이 더 다채롭고 사람도 좋고, 풍경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인도에 가면 함피라는 곳이랑 안다만 아일랜드, 이 두 곳은 꼭 들려봐. 정말 좋았어.
남미 여행 하게 되면 여행 시작할 때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정말 좋아. 느끼는게 달라져. 여행자를 위한 스페인어 코스 같은게 엄청 많고 싸기도 싸니까. 단기간에 생존 스페인어 정도는 터득할 수 있을 거야. 여행자들도 더 많이 만날 수 있고.
너가 말한 곳 중에서 인도, 우유니 사막, 남미, 파리, 호주, 뉴질랜드 정도는 잘 알려줄 수 있으니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언니랑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도 안개가 자욱한 계획이 슬 윤곽이 들어나는 기분이 들더라. 모르기 때문에 느꼈던 두려움증도 어느샌가 사라져버렸고. 다시 여행 때문에 설레이기 시작했어. 어릴 적부터 세계여행, 세계여행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했는데 말야. 이미 한 걸음을 내딛은 거야.
으아 떨린다. 그리고 좋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인간책이 되야지!
PS.
그런데 나 3년 동안 인도도, 우유니도 안갔다? 여행 떠나기 전엔 괜한 두려움 때문에 뭐든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그런데 가보니까 거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알려주더라고. 잘왔다면서 자기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고 반기면서 말야.
여행 전에 두려운 건 당연한 거야. 안 가본 곳으로 떠나는 거니까. 그치만 여행이 무서워지거나 숙제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공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행의 설레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여행을 앞두고서는 인간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PS.
혜림 언니 고마워요! 언니의 답장에 다시 맘 놓고 여행을 떠난다는 기쁨에 설렐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