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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퓨레 Mar 30. 2022

AI 스피커에게 오늘의 운세를 물었다

우리의 하루를 채우는 어색한 공존들


우리의 하루는 꽤 많은 종류의 어색한 공존으로 채워져 있다. AI 스피커를 사용한 지 5년 정도 된 나는 AI 스피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오늘의 날씨나 미세먼지는 기본이고, 최신 뉴스를 들려달라고 조를 때도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오늘의 운세'다. 이 의외의 결과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사람이 말해주는 운세는 믿든 믿지 않든 듣는 이의 기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만, 데이터만을 말할 것 같은 AI 스피커가 넌지시 건네주는 운세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면 그만이다. AI와 운세의 어색한 공존 덕분에 긍정적인 메시지만 취하고 안 좋은 건 냅다 버릴 수 있게 됐다.


시간을 확인할 때 수시로 쳐다보는 기계식 손목시계는 어색한 공존의 또 다른 예다. 그 어떤 시계보다 정확한 핸드폰 시계가 있음에도 내 손목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태엽으로 구동되는 전통 방식의 손목시계가 채워져있다. 정확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끔 1950년대에 생산된 시계를 착용할 때도 있는데, 정확지 않은(물론 일 오차 30초 이내의 잘 관리된 시계들이다.) 시계에 의지해 수많은 미팅과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날은 뿌듯한 감정까지 들기도 한다. 2022년, 디지털 첨단 시대에 아날로그에 의존하는 묘한 스릴이 즐거울 뿐이다.


점심시간 선배가 오늘은 특별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종로의 빌딩 숲 사이에서 찾은 곳의 이름은 'vacances(바캉스)'. 1960년대 지어진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였다. 카페 안은 슈트 차림의 직장인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고, 화이트와 에메랄드빛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맘 편히 숨을 내쉴 수 있는 틈을 주는 듯했다.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니 외부에서 볼 수 있게끔 설치된 'vacances'라는 간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조금 넘는 바캉스인 걸까. 시간과 공간, 그리고 활자의 어색한 공존이 커피 한 잔에 묘한 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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