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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퓨레 Apr 04. 2022

당신만의 영감 루틴이 있나요?

구찌 수장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마르지 않는 영감


최근 읽은 책에서 '긱(gig)' 이코노미 다음으로 '패션(passion)' 이코노미가 올 것이라는 내용을 접했어. 시간과 노동력을 작은 단위로 쪼개거 운영하는 긱 이코노미는 얼추 알고 있었지만 패션 이코노미는 생소하더라구. 조금 찾아보니 한 분야에 대한 열정이 생계 수단이 되는 것을 뜻하는 듯싶었어. 아, 말하자면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전업 또는 부업 크리에이터들이겠구나.



용어만 몰랐지 패션 이코노미는 이미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현상이었어. 혹자는 월수입 백만 원을 위해서는 유튜브는 콘텐츠 조회 수는 몇 백만, 인스타그램으로는 팔로워 몇 만 이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해 주기도 하는데, 창작활동의 지표가 수익 용어로 즉시 번역되는 느낌이 어색하지 않은게 사실이야. 오늘도 Z세대들이 올리는 콘텐츠에는 '리즘아 제발'이라는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걸리기를 소망하는 문구를 적은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아. 운수 대통으로 알고리즘에 잘 걸려들면 소년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는 시대에서 리즘이를 호출하는 부름이 꽤 절실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



패션 이코노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잘 만들어야 할 텐데. 부캐가 생업을 해결하는 본캐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기간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일까? 그 영감은 어디서 끌어와야 할까? 그래, 나는 언제나 김칫국부터 마시는 스타일이니까 창작을 위한 영감 루틴을 짜보기로 했어. 먼저 책을 읽는 것을 빼놓을 수 없겠지. 누군가의 생각과 이론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과 속도로 흡수해나가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야. 특히 처참하게 망가진 문학의 비중을 늘려야겠어. 문학이야말로 ENFP의 나에서 벗어나 캐릭터 편에서 생각해볼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거든. 마치 딱딱한 바닥에 볕 짚을 풍성하게 깔아두는 느낌이랄까. 어느 자세로든 누울 수 있도록 말이지.



그리곤 미술작품을 보러 다녀야지. 머릿속에 뭔가를 많이 채웠으니 사유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기획자들은 어떤 과제에 대한 방향이나 정보를 숙지한 이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것을 하면서 영감을 받는대. 너무 복잡했던 두뇌활동을 조금 가라앉혀주는 거지. 나실 나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의 해석보다는 내 기분을 생각하거나 그간 있었던 고민을 떠올릴 때가 많거든. 신기하게도 카페에 앉아 혼자 집중해서 해결책을 떠올리려 할 때보다 마음도 몸도 훨씬 편하게 답이 도출되는 경우가 많아. 뭐? 미술관에 딴생각하러 갔냐고? 오해하지는 마. 빈 공간이 충분한 날에는 적극적으로 미술작품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여도 좋아.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를 적극 활용하자구.



사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2022년까지 이렇게 핫할 줄은 몰랐어. 미켈레가 보여줬던 맥시멀리즘이 금방 질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내가 그를 너무 몰랐던 거지. 그의 아버지는 로마에서 어린 미켈레의 손을 잡고 자주 미술관을 방문했다고 해. 게다가 매우 히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기에 아들 미켈레는 그 영향 덕분에 예술과 문학, 그리고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구찌의 영 아트스타로 선정됐던 아티스트 '코코 카피탄'은 본인의 작품에서 미켈레를 마치 예수처럼 표현하기도 했는데, 단순히 본인과 구찌와의 우호적 관계만으로는 불가한 수준의 묘사였어. 정말 뛰어난 창작자라고 인정한 것 같더라니까. 그를 진짜 예수처럼 그려놓았거든.



그의 영감 루틴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남들 보다 두 배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야. 이번 전시는 다른 수많은 브랜드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거든. 보통의 브랜드 전시는 자신의 길고 길고 긴 역사를 소개하거나, 아카이브 상품을 보여주고 신상품을 공개하는 식의 전시들이 많았어. 그에 반해 미켈레는 자신이 진행했던 캠페인을 소재로 전시를 구성했어. 브랜드 탄생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구찌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충분했던 거지. 구찌만큼 매 캠페인에 변화무쌍한 아이디어가 넘쳐 흘렀던들 브랜드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꽤 탄탄하고 단단했어. 전시장을 나올 때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그는 진짜 예술가구나. 패션은 그저 표현의 수단 중 하나일 뿐인.



#참잘했어요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2022.03.04~04.10
DDP
*무료/예약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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