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네 철판요리 1부
(Sik's Teppanyaki)

#5 네 번째 이야기, 2011. 2. 22 내겐 너무나 잔혹한 그날!

by goodthings

바쁜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보내고, 이제 새해가 찾아왔다.

작년에 지진에 대한 공포와 염려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건 "망각"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 것 같다.

모든 걸 잊지 않고, 다 기억한다면 세상 무서워서 못살지.. 그럴 거다."

그러기도 할 것이, 직접적인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거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한번 들으면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날짜다.

“2가 세 개”

2월 22일.

오늘은 요리학교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다 같이 학교 근처의 pub에서

맥주 한잔을 하기로 해서, 매니저에게 오늘 하루는 쉬게 해달라고 이미 말을 해 놓았다.

오늘은 12시 30분이면 끝나는 날이다.

실습까지 다 맞춘 후에 정리를 하고 과친구들과 함께 탈의실로 갔다.

모두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지. 싱글벙글 마냥 좋은 모양이다.


“Hey. Guys. Hurry up”

“Don’t push me!!”

옷 갈아들 입으면서 서로 장난치고 밀고, 어린 친구들이라서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다.

그냥 즐거운가 보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은 대부분 뉴질랜드 현지인이었는데,

그중에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 친구 “훈”이가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친구인데, 중학교 때까지는 한국에서의 교육도 경험을 하여서

영어, 한국어 둘 다 잘한다.

과제를 하다가 영어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많은 도움을 준 아주 고마운 친구이다.

이제 우리 모두 옷을 다 요리복에서 일반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훈이가 갑작스럽게 이야기했다.


“Hey, Guys. Did feel any… feeling like earthquake..”

“형, 뭐 못 느끼셨어요?”

“모르겠는데.”

“Hurry up. Korean boys. Let’s go out.”


다들 웃으면서, 막 나가려는데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형. 가만히 계세요.”

“Everyone. Relax and wait.”

훈이가 침착하게 모두에게 안심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움직임은 계속 됐다.


1-2분쯤 지났나, 잠시 지진활동이 멈추었다.

그때, 훈이가 크게 소리치며,


“형. 빨리 뛰어 나가요, 여기서 당장. 지금 아니면 안 돼요. “

“Everyone get out right now”

다행히 모두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밖을 보니, 시내 중앙에 있는 건물이 뿌연 연기를 보이며 점차 낮아지는 것이 보였다.

아비규환.

너무 큰 충격으로 모두들 울음바다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평화로운 이도시에…”

바빠졌다.

급한 대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진으로 무선전화국 기지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통화량이 너무 많아서

연결이 안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윌리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내가 와서 픽업을 어떻게든 해갔는지, 유치원으로 갔는지..

미칠 지경이었다.

학교에서 라디오방송을 대학 내에 있는 모든 스피커에 연결을 해서 실시간 사건사고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도로에서 하수도가 터진 지역도 많아서, 운전을 하지 말고 안전한 지역에 대피하여 있으라고 했다.

나는 걱정이 됐다. 움직여도 된다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유치원 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대학 내 주차장 있는 쪽에 위치해 있었다.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집에 잘 데려갔겠지. 그럴 거야..” 혼자 무한의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 다시 친구들 있는 쪽으로 왔다.

급한 마음에 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도로 곳곳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Fitzgerald Avenue.jpg

하수도가 터지고 도로가 불뚝 위로 솟아서 걸어서 못 가는 길도 꽤 많았다. 그런 곳을 잘 피해서 가다 보니,

갑자기 한 친구가 생각났다.

“맞다. 정민이한테 자전거 있는데 빌려야겠다. 자전거라면 좀 더 빨리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혼잣말로 이야기하면서, 정민이 집 앞에 갔다.

다행히 모두 집에 있었다. 이 친구도 아이가 둘인데, 제수씨와 네 식구가 모두 무사했다.


“정민아. 고마워. 내가 좀 쓰다가 다음에 가져다줄게.”

“형. 괜찮아요. 빨리 집에 가보세요. 형수 님하고 애들…”


“그래. 먼저 갈게. 제수씨 감사합니다. 다들 안전하시길 기도할게요..”

그리고 , 막힌 길은 피하고 피해서 평소 걸어서도 30분이면 갈 거리인데,

자전거로 40분 정도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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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먼저 안아 주었다.

“윌리엄은?”

“내가 데리고 왔어.”


“전화 수십 번 했는데 안되더라. 학교랑 유치원이 가까우니까 데리러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아무튼 진짜 천만다행이다. ”

“전화도 안되고 그래서 지진이 좀 잔잔해졌을 때 윌리엄 데리러 갔지. 다행히 운전하고 나올 때까지는 도로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나 올 때는 도로가 다 불뚝 솟고, 여기저기 물 터지고 난리도 아냐..”

“뉴스에 나오더라고. 고생 많았네. 일단 좀 앉아. 놀랐을 텐데… 나도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우리 네 식구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뉴스에서 계속된 인명피해 소식이 들렸다.

2011년 2월 22일.

이날 이후로 나의 삶의 노선에 큰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휴대전화의 시그널이 다시 정상화되었을 때, 올리버 씨한테 전화를 했다.

“괜찮으세요. 저도 좀 전에 집에 들어왔어요.”

“네. 전 괜찮은데.. 가게의 일부 천장이 내려앉았어요. 건물을 철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저도 좀 전에 사장님한테 연락받았어요.”


“진짜요. 어떻게.. 다들 안전하게 건물 안에서 나오셨죠?”

“네.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쪼록 몸 잘 살피시고, 사장님이 어떻게 할 건지는 나중에 알려주신다 했으니. 제가 듣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조만간 곧 뵐게요.”


악몽 같은 그날.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없었으면 하는 그날이었다.

“아직까진 테판야끼 경력이 충분치 않은데… 더 배워야 하는데…”

뭔가에 "열정"을 가진 것도 오랜만이어서 너무 아쉬웠다. 여기서 멈춘다면....

생각에 생각을 하느라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내일 아침 되면, 집 근처 학교에서 식수를 두병씩 가져갈 수 있다니까… 사람 몰리기 전에 가야지..”

“철판요리 계속하고 싶다……그리고, "망각"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억지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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