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11)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인상적인 대사다. 누군가, 나에게 고양이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라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인 것 같아요."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양양과 같이 가족의 연을 맺은 고양이가 여럿, 가족이 아니라도 또 다른 필연 같은 우연으로 태어남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당시는 몰랐지만 결국에 좋은 가족을 찾기까지 '다리'가 돼준 고양이도 여럿 있었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그리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또 언제 어디선가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게 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환한 햇살에 바람은 부드럽고 시원한 한낮, 어느 골목길 자동차 아래서 잠을 자던 고양이가 나를 보자마자 기지개를 쭈욱 켜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보들보들 통통한 제 몸을 비비고 급기야 발라당 누워 장난을 건다. 딱 이날의 날씨 같은 행복감에 휩싸인다.
녀석은 지금껏 매정하고 사나운 인간에 해코지를 당해본 적 없음이 분명하다. 한 번이라도 커다랗고 거센 손에 혹은 발에 또는 그보다 더 가혹한 무엇에 지독히 아파봤다면 그 기억은 두려움의 벽이 되어 그 뒤로는 절대 그 벽을 쉬이 넘지 못하니까.
조금 전 다 읽고 내려놓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란 소설 속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으면서 자기를 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개의 눈'. 그 눈이 어떤 것인지 안다. 이해도 원망도 없이 그저 당혹스럽고 두렵고 슬프기 그지없는 그 순한 눈빛.
내 발치에 누워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리 데굴 저리 데굴거리며 제 머리며 배며 엉덩이 어디든 내 손길이 닿는 것을 그저 즐기면서 천진스레 호감을 표하는 고양이. 그런 녀석이 더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돼서 "너 아무한테나 이러면 안 돼." 알아듣지도 못할 충고를 하는 나.
부디 한 번도 상처 받지 않기를. 환한 햇살에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 부는 그런 날에 난데없는 폭우나 우박이 쏟아져내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