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키워드 <리듬>
너는 내가 장담하는데, 잠만 잘 자도 삶의 질이 절반 이상 올라갈 거야.
연인으로부터 해마다 이 말을 수시로 듣고 있다. 그말인 즉슨 현재 내가 잠을 잘 못 자고 있으며 그런 삶이 꽤나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변명거리를 찾자면 여러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결국엔 생활 습관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살던대로 사는 게 제일 편하니까.
살던 대로 사는 것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해가 바뀔 무렵이었다. 마치 어느 날 아침, 대뜸 자고 일어나서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부르짖었던 <모순>의 안진진처럼 내면에서 어떤 경고음이 울린 것이다. 유튜브에서 '6시간 이하로 자면 큰일 나는 이유'와 같은 제목의 위협적 썸네일을 마주할 때 괜히 몇 번씩 뜨끔하며 건강상 걱정이 된 것도 있지만 이 '안진진적 사고'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밀도 있게.
그간 나의 생체 리듬을 돌아보자면 이런 식이었다. 6시 20분쯤, 피곤한 상태로 눈을 떠 출근하면 곧장 라운지에서 라떼를 내려 마신다.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카페인의 기운을 느끼며, 이제 더이상 피곤하지 않다고 뇌를 속인다. 그래놓고 점심 먹고 곧장 라운지 소파에서 또 낮잠을 잔다. (이때 포인트는 아주 짧고 굵은 숙면을 한다. 가끔 꿈도 꾼다.) 마침내 커피와 낮잠의 콜라보로 완전히 각성된 오후를 보내고 퇴근한다.
지옥철을 뚫고 집에 도착하면 7시 30분 남짓. 밤이 깊어질 때까지 줄어드는 나의 자유 시간을 아까워하다가 1~2시쯤 불을 끈다. 스탠드 불을 약하게 켜둔 채로, 말똥말똥한 눈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눈이 피로해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잠이 든다. 아침이 되어 또 다시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가정의학과, 안과, 내과 그 외 각종 분야 교수님들이 보았을 때 지적할 거리가 한두 개가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다.
3~4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상을 소화할 때는 늘 뿌연 안개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안개가 낀듯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브레인포그' 상태. 몸이 개운한 날보다 찌뿌둥한 날이 많으니 짜증이 쌓이고, 작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이 잦아졌다. 타인에게 뾰족하게 대했으며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수면 부족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엉켜버린 리듬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절묘하게도 그 무렵 친구들과 각자 만들고 싶은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S가 매월 슬로건을 만드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보통 해가 바뀌면 1년의 목표를 설정하기 마련이지만, 너무 거창한 목표는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월별로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P가 '컨셉충' 같은 거냐며 웃었다. 내가 안 될 건 뭐냐고 받아쳤다. 가상의 ’나‘가 현생의 내가 만든 세계관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면 다르게 사는 게 조금은 쉬워지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지켜야 할 이달의 슬로건은 너무나도 명료했다.
잠을 충분히 자는 사람.
별 거 아니지만, 나에겐 아주 별 거인 것. 실행은 쉽지만 지속이 어려운 것.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슬로건을 만들고 나니 왠지 적힌 대로 살아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계관 속 ‘가상의 나’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받아 의문의 힘에 이끌려 작동하듯이.
자연스럽게 잠을 유도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날이 많아졌고, 물을 맞으며 잠에서 깨어났던 아침 샤워는 숙면을 돕는 밤 샤워로 탈바꿈했다. 가급적 12시 전후로 방 불을 껐고, 유튜브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방을 완전히 깜깜하게 만들어도 보았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습관적으로 찾던 커피는 한 잔으로 줄이거나 디카페인으로 바꾸었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본능적으로 소파로 향하는 몸을 바깥으로 끌고 나와 2km 정도 걸었다.
물론 정주행하던 드라마를 한 편 더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덮고, 식사를 하고 나면 눕고 싶어서 온 몸이 배배 꼬이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 할 것이라며 다른 방향으로 뇌를 속였다. 그러다가도 유혹에 져버린 날에는 친구들과 했던 농담을 떠올렸다. 월별 슬로건도 힘들면 주별로 설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자기 위안용 멘트였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리듬이 엉망이 된 날엔 그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초기화하고 또 새로 세팅했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뛰고, 조금 더 일찍 불을 껐을 뿐인데 무언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우선 알람을 짜증스럽게 끄지 않게 되었다. 시간에 쫓겨 무언가를 빠트리기 일쑤이던 아침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고, 집에서부터 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작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출근길에 책을 챙겨 나가 지하철에서 독서를 즐기는 이상행동(?)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몇 주 전에는 만원 지하철에서의 독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적었음에도.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잠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쓰고 싶은 글이, 참여하고 싶었던 모임이, 배우고 싶었던 기술이, 도전하고 싶었던 분야가 새잎처럼 움텄다. 나의 몸이 의미 없이 깨어 있는 동안 영혼은 피로에 둘러싸여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생체 리듬을 원상복구 시키는 일은 영혼의 리듬을 되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엊그제 같은 친구들을 만나 슬로건에 대한 후일담으로 수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나의 말에 P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 안 돼, 네가 잠에게로 가야 돼. 그러자 수동과 능동을 활용한 밈이 떠올라 웃었다. 그래, 잠이 온다는 건 너무 수동적이지. 이번엔 내가 잠에게로 간다. 더 부지런히 걷고, 더 많이 땀 흘리고, 더 치열하게 머리를 써서 밤이 되면 잠에게로 곧장 달려가겠다...!
만, 이 다짐이 무색하게 오늘은 커피를 2잔이나 마셔버렸다. 괜찮다. 내일 다시 세팅하면 그만이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스텝이 엉키면 탱고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리듬에 맞춰 탱고를 추는 날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