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 봄도 롤러코스터를 듣는다
어제 미루고 미루던 옷장 정리를 했다. 나에게 옷장 정리란 너무나도 귀찮고 피곤한 것이기에 이 계절이 왔음을 더 이상 지체없이 받아들여야 할 때 주로 이루어진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요며칠 숏패딩을 입고 다니면서 몇 걸음 못 걸어 지퍼를 내리거나 아예 벗어버리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봄 가을 아우터를 입기엔 또 쌀쌀한 요즘. 옷장 앞에서 가장 많이 서성이지만 마땅한 소득 없이 돌아서는 이 때가 바로 두꺼운 털옷을 넣어버릴 타이밍이자 봄이 왔음을 느끼는 때다.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길가에 작게 핀 꽃을 발견하는 낭만의 순간보다 이런 생활 밀착형 불편에서 변한 계절을 체감한다.
옷장 정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루틴처럼 실행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바꾸는 것이다. 낮 기온이 7도 정도를 웃돌 무렵에는 깊고 진한 발라드나 소울풀한 R&B가 들려오면 그렇게 더울 수가 없다. 뭐라고 해야 할 지... 귀로 듣는 사우나 같달까. 어깨에 걸쳐둔 숏패딩을 아예 벗어버린 것도 에어팟을 타고 흐르던 더운 노래 탓이 한 10%는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럴 때면 지난 겨울 나를 위로해준 음악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BPM의 흥겨운 노래들을 다시 찾아 나선다. 이 일은 옷장 정리 만큼 성가시지 않다. 오히려 들뜨고 즐겁다.
사실 '찾아 나선다'는 말은 과장에 가깝다. 봄에 듣는 노래가 매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노래를 발견하는 재미에 음원 사이트 신곡 탭에 들어가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들어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돌고 돌아 그저 두 가수의 노래들만 영원히, 무한정 반복한다. 롤러코스터와 클래지콰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롤러코스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롤러코스터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돌아간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에 돌아가며 몇 명씩 조를 짜서 교실 청소를 했다.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이셨던 H 선생님은 청소 시간 마다 지금은 없어진 소리바다로 직접 고른 대중 가요를 틀어주셨다. 당시 같은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 보다 젊은 편인데다 이미 여러 면에서 트렌디하다고 느꼈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뿐이었다.
선생님은 12살 인생에 본 적 없는 어른이었다. 파지티브(Positive)한 쪽으로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쿵푸를 수련해온 선생님은 학기 초부터 자신을 선생님 대신 '사부'라고 부를 것을 명령했고 한 술 더 떠서 매일 아침 지원자에 한해 학교 옥상에서 쿵푸를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나는 아침 쿵푸를 배우는 학생 중 하나였다. '기린보' 자세는 아직도 곧잘 할 수 있다.) 당시 선생님은 '2002 안정환'을 연상케 하는 긴 바람 머리를 해서, 쿵푸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리 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4.19, 5.18 등 역사적인 기념일에는 꼭 관련 비디오를 보여주시면서 한국사 강의를 해주셨고, 학기가 끝나면 우수한 조를 선정해서 자취방에 초대해 놀아주셨다. 오락실 게임기를 집에 구비해 두셔서 선생님과 킹 오브 파이터를 대결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학생들이 글을 쓰고 운영해보도록 하셨다. 그 홈페이지의 이름은 '촛불호'였고 선생님은 우리를 선원, 스스로를 선장이라고 칭했다. 당시 나는 5학년 2반의 국정홍보처로써 반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식을 전하는 기자 역할을 맡았다.
뒤늦게 알게된 거지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독교 학교에서 선생님의 행보는 여러모로 일탈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것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 뿐, 당시에도 선생님이 우리를 그저 평범한 사제지간으로 대하지 않았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일탈'이라고 하니 자우림의 일탈도 틀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신도림역 앞에서 스트립쇼를 한다는 그 노래를...아무래도 선생님은 노래란 좋으면 그만, 가사 따위 개의치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 그 날은 내가 당번 중에 한 명이었는지, 교실에서 빗자루를 쓸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그저 이 청소가 빨리 끝나길 바라며 기계적인 손동작을 이어가고 있을 때, 들어본 적 없는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중저음 매력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교실 앞 스피커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려 TV장의 화면을 쳐다봤다. 파란 창 안에서 가수와 노래 제목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롤러코스터 - 습관'
그렇게 TV장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치 15세가 채 되기도 전에 15세, 혹은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볼 때처럼 아슬아슬하고 이상한 기분으로. 12살인 내가 이런 노래를 들어도 되나 싶을 만큼 알 수 없는 센티멘털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자꾸만 듣고 싶었다. 오묘한 중독성이 귓가를 사로잡았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단순하게 반복되는 가사가 노력하지 않아도 외워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H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열두 살 아이들 앞에서 롤러코스터의 노래를 틀어주셨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우리가 즐겨 듣던 노래는 '슈퍼주니어 - U'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말했듯 대중가요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 따위 개의치 않아 하는 쿨한 분이셨다. 또 다행이랄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빨리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을 뿐 흘러 나오는 노래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롤러코스터란 그룹은 교실의 뿌연 먼지, 그리고 H 선생님과 함께 최초로 각인되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그 노래가 떠오르던 때가 있었다. 아예 중학교 2학년 때는 '습관', '숨길 수 없어요' 등을 싸이월드 BGM으로 박아두었다. 아마도 봄이었을 것이다. 나름 머리가 커졌다고 가수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까지 했다. 좀 더 센티멘탈해보이기 위해서 스킨은 회색빛으로 바꾸었다. 예상했겠지만 중2병이 왔을 때였다.
대학생이 되면서는 '습관', 'Last Scene', '내게로 와' 그리고 '원더우먼', '넌 쉽게 말했지만' 등 조원선의 솔로곡까지 좀 더 넓은 범위의 노래를 즐기고 또 노래방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또 대학교 2년 동안은 교내 방송국 PD라는 직분을 이용해 롤러코스터 노래를 아침 저녁으로 캠퍼스에 종종 틀고는 했다. 그렇게 30대가 된 지금까지 롤러코스터는 여러 방식으로 나의 플레이리스트와 삶에 빠지지 않는 가수가 되었다.
청각이 민감한 편이어서 아무리 좋다고 하는 노래들도 금세 질리는 편임에도, 롤러코스터 노래는 희한할 정도로 매번 새롭고 흥겹다. 또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어떤 날씨에도 어울린다. 다만 왜 봄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찰이 필요하다. 청소를 하던 그 때가 봄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나는 그저 그 당시 나에게 가장 멋있어 보이던 청년, H 선생님의 취향을 동경했던 것 같기도 하다. 늙지 않을 것만 같던 호탕한 웃음 소리와 드래곤볼 주인공이 떠오르는 바람 머리, 넘치는 활력이 꼭 세련된 어른의 세계이자 태동하는 봄처럼 느껴졌는지도.
어디선가 서른 셋이 넘으면 새로운 노래를 듣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단 말을 듣고, 의식적으로 신곡을 들어보려 하는 요즘이다. 다만 그럼에도 역시 그 끝은 듣던 노래, 익숙한 노래, 내게 봄을 일깨워준 노래로 돌아가고 만다. 그렇게 올 봄도 롤러코스터와 조원선을 듣는다. 어느덧 그 시절의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들어 이제는 그 가사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채로.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흥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