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집 포비아의 시 입문기

by 안진진

날씨가 좋은 날에는 종종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려 신간을 구경한다. 투명한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콧속으로 훅 끼쳐오는 교보문고 특유의 포근한 향기와 즐비한 책들. 그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어떤 어려운 책이라도 쭉쭉 읽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인문, 사회과학, 고전, 국내 소설, 해외 소설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발길을 옮기며 품에 들어올 책들의 후보를 신중히 추린다. 그러다 어느 부근에 도달했을 때 멈칫.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대며 몸을 돌린다. 등지고 걸어가는 방향 뒤에는 알록달록한 시들이 매대에 한가득 쌓여있다. 시. 단 한 글자만으로도 어떤 압도감을 주는 문학. 시는 내가 유일하게 친해지지 못한 책의 유형이다.


딱히 편독하지 않는 편임에도, 어렸을 때부터 시에 한해서는 막연한 편견 같은 것이 있었다. 어렵고, 비유적이고, 난해할 것이라는 편견. 그 편견을 깨보고자 성인이 되어서도 몇 차례 시집을 사봤지만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사실 난해한 것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길이가 너무나도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어렵기로 정평이 난 소설이나 비문학 서적을 읽을 때도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꺼운 책은 앞으로 몇백 장이나 남았으니 작가가 그 사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이러쿵저러쿵 설명해 줄 테고,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서서히 이해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반면 시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시 앞에서는 언제나 솜사탕 씻은 너구리, 일명 '솜씻너'가 된다. 어디선가 가져온 솜사탕을 냇가에다 씻고 허무한 표정으로 빈손을 쳐다보는 너구리 사진을 일컫는 밈이다. 시는 내용에 대해 머릿속으로 채 이해하기도 전에 행이 후루룩 끝나버린다. 이리저리 뒤적여도 화자의 의도를 유추해 볼 텍스트들이 남아 있지 않다. 포기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솜사탕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의 달콤함을 느끼고 싶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를 읽는 사람은 꽤나 멋져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 멋짐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독서 모임을 하러 카페에 도착했을 때, 한 번도 늦는 법이 없는 M은 늘 그렇듯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는 눈웃음과 함께 허겁지겁 자리에 앉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 앞에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아이패드 미니 크기의 얇은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책은 크기와 색이 다른 두 개의 직사각형이 포개져 있는 듯한 모양이었고, 작은 직사각형 안에는 스케치 형태로 인물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교보문고 아이쇼핑 1n년 경력으로 책의 정체를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서점에서 등지고 달아났던 그 지점에 놓여있던 것, 한 번도 펼쳐본 적 없지만 왠지 모르게 시선이 가는 그것, 문학과지성 시인선 시리즈였다.


내가 속한 모임은 지정 도서와 자유 도서를 2주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읽는다. 자유 도서로 모임을 진행하는 날에는 각자 가져온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 자유롭게 감상을 공유한다. 본격적인 책 얘기에 앞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각자의 근황을 공유하며 스몰토크를 하는데, 그날은 시작부터 시선이 M 앞에 놓인 시집으로 힐끔힐끔 쏠렸다. 표지에는 '보조 영혼', '김복희 시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어떤 책이든 읽어보고 싶게끔 설명하는 재주가 있었다. 과연 시집도 해당할지 궁금했다.


M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제목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심리학 박사 학위를 딴 그녀는 '보조 영혼'이라는 제목이 어떤 학자의 이론을 연상케 해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특히 "보조 영혼이 다가와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일러준다"는 구간을 가리키면서, 인간의 영혼에 보조 영혼이 있다는 발상이 귀엽고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나는 버퍼링 걸린 노트북처럼 한두 박자씩 늦게 '아', '오' 하는 의성어를 내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또 다른 부분은 여전히 어려웠다. 15분 정도 흘렀을까, 다음 차례로 넘어갈 무렵에 나는 순간적으로 아주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요, 저 궁금한 게 있어요! 혹시, 다들 시를 어떻게 읽으세요?


생뚱맞은 질문에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잠깐 조용해졌다. 분위기를 읽은 나는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조금씩 오래오래 곱씹으면서 읽는지, 아니면 다른 책처럼 똑같이 읽는지 궁금해서요. 제가 시를 좀 어려워하거든요. 읽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늠이 잘 안돼서…… 말끝이 애매하게 흐려짐과 동시에 모임원들의 얼굴에 '아하' 하는 듯한, 동그란 미소가 번졌다. 모두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M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소설 보듯이 후루룩 읽어요. 그렇게 읽다 보면 어떤 문장에 딱 꽂힐 때가 있어요. 꼭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딱 한 문장만 좋아도 그 시가 좋아지거든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책의 첫 번째 장을 펼쳐 우리에게 읽어주었다.


「가변 크기」

하나의 미술관이 작품 하나의 규모를 감당할 수 있을까
말할 것도 없지

상자에서 소리를 꺼낼 수 있을까
더 큰 상자에 소리를 옮겨 담을 수 있을까
말은 하면 안 되지 섞이니까

더 큰 시를 이 책이 싣을 수 있을까
더 작은 시는?

시 읽는 사람을 공원 벤치가 쉬게 할 수 있을까
단 1분이라도

이제는 시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이름은 시예요
잊지 않았지요 말하듯이
이름에 그 사람을 담을 수 있을까
또 낭독하듯이

모양이 다른 죽음을 이 관이 담을 수 있을까
낭독이 모든 시를 담았다가 조금씩 흘리는 것처럼



M은 1차원 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갖는 역설이 좋다고 하며 특히 마지막 행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버퍼링이 걸렸다. 이 마음을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렵지는 않은데 어려움. 알 것 같은데 모르겠음.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온 건 모임이 끝나고 2주 뒤쯤이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 어려울 때, 접점이나 계기가 있으면 확실히 마음의 장벽이 한 칸 정도는 낮아진다. 그런 면에서 독서 모임은 평소의 나답지 않은 책을 고르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나는 M이 소개한 책으로 시집의 세계에 발을 담가볼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빌려온 책을 침대 바로 옆 협탁에 두었지만, 매일 밤 내 손은 시집 바로 밑에 깔린 소설로 향했다. 며칠이 흐르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첫 장을 펼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어깨에 힘을 빼고 책장을 넘겨나갔다. 알쏭달쏭해도 그런대로 넘어갔다. 이해하지 않아도 돼요. 시는 느끼는 거예요. 모임원들의 말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보면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버릇이 튀어나와 시에 숨은 의미나 정답 따위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이 시 속 화자의 심경은? '날개는 석상처럼'에서 '날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 속에서의 '너'는 누구인가? 아무리 물어도 당연히 알아낼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근본적인 의문이 들 때쯤 나는 펼쳐진 시집을 손에 든 채 잠에 들어 있었다.


며칠 후 카페에서 또 한 번의 도전이 이어졌다. 한밤중 침대 위가 아닌 한낮에 채광이 깊게 들어오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니 좀 더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환경의 영향일까, 순간순간 마음에 와닿는 문장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비밀은 별건 아니고, 네 가슴속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 네 가슴속에 놓아두는 거야"(「네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워라 그리움 없던 날들"(「바닥의 시」), "너무 자주 한 상상은 거의 추억이나 다름없는 거 알지"(「너를 사랑해」) 같은 구절들.


이 짧은 글자들 안에서 나의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가 하면 모르는 사람의 기나긴 삶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멜랑꼴리한 여운에 책장을 넘겼다가도 잠시 후 다시 돌아와서 한 번씩 더 바라보게 되었다. 한 문장만 좋아도 시 전체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얼핏 알 것 같았다. 그 시들을 조금 더 좋아하고 싶은 마음에 인덱스를 자리마다 꾹꾹 붙였다.


마침내 마지막 시를 읽을 차례였다. '미래의 시인에게'라는 제목을 단 시는 총 세 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장을 읽고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페이지가 눈에 담겼고, 나는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모두라는
개념에서 빠져나오기

밤이 온다
잠이 온다
비가 온다
는 표현이
표현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기


이 순간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욕조에서 튀어나온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의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거짓말이다. 약간 극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실제로는 그보다 약한 강도지만 시를 읽는 내내 정처 없이 헤매던 마음이 안정을 찾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념에서 빠져 나오라’는 구절은 생각을 한정 짓고 세상의 상식 안쪽에서 무언가를 정의하려던 나를 따끔히 타이르는 것 같았다.


밤이 온다는 건 지구의 자전 활동으로 하늘이 어두워지는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다리가 달린 밤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양일 수도 있다. 잠이 온다는 건 하품이 나오고 눈이 감기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잠이라는 생명이 초인종을 누르고 노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내 상상이 다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에서 틀렸다는 건 없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모든 감상이, 엉성한 마음이 그 자체로 시라면 시일 수도 있다. 시인과 좀 더 내밀한 교류를 하려면 응당 더 많은 감상과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 작은 깨달음은 제법 유의미하다.


이어서 나오는 평론가의 해설은 머릿속을 좀 더 명쾌하게 만들어주었다. “그의 언어는 답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아니라 하나의 답으로부터 멀어지는 움직임으로 이곳에 거듭 둥지를 짓는다.”(p132) 나는 자꾸만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으려 했다. 문제집에서도,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하다못해 인생에서도. 무엇이든 방향은 정해져 있다고 믿으며, 다수가 동의하는 생각을 좇으려 했다. 시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옳고 그름은 없으며 글자를 적고 남은 종이의 여백은 전부 독자의 몫이다. 분명 그래서 멀리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같은 이유로 매력적이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M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시를 읽었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가득 띄워야 했던 그날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변',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음. 또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을 바꾸거나 달라지게 할 수 있음. 시집 한 권을 읽으며 느낀 바가 이미 시 안에 담겨 있었다. 휴대폰 메모장을 켜서 모임원들로부터 추천받은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어쩌면 올해는 서점 한쪽 편 눈길 주지 않았던 곳에 머무는 날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시를 잊지는 않았지만... 두려워하는 그대에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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