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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당마녀 Oct 01. 2022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준비

집에서 꽤 거리가 멀었던 병원을 혼자 운전해서 다니시며 항암치료를 받으셨던 아버지는 혈압이 떨어져 쓰러지는 경우가 생기면서 운전하지 않으시고 내가 모셔다드리고 주말이 되면 어머니만 다시 모셔 오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병원에 모셔다드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물론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는 하니 괜찮다고 하지만 나 혼자 괜찮지 않은 상황 또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 차도 방전이 되고 아버지 체력도 방전될 때쯤. 집과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코로나 시국에 대학병원은 특히 월요일 아침의 대학병원의 많은 환자는 노아의 방주를 기다리는 길 잃은 양처럼 무의미한 손짓을 따라 몇 번을 움직이고 다시 시험을 통과하고 그렇게 복잡한 병원 접수 절차를 마치고 첫 진료를 받으러 갔다.

앞서갔던 병원이 너무 최악의 상황만을 말한 게 아닐까 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의사의 첫 한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 솔직히 상황이 좋지 않다. 차라리 호스피스 입원 치료하시는 방법도 있다. ”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아버지만 힘들게 하니 차라리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이었다. 어머니도 그래도 한 번만 더 해보자며 담당 의사에게 사정했지만 담당 의사는 단호하게 아버지가 선택하셔야 한다며 아버지의 대답만 기다리셨다. 아버지는 눈물만 조용히 흘리시면서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내자 의사도 한발 물러서며 일단 생각 좀 정리하고 다음 진료에 치료 방향을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제는 정말 아버지의 선택만 남았다. 여생을 좀 정리하시며 돌아가실지 그래도 작은 희망에 걸어볼지 선택해야 했다. 나의 말 한마디가 부질없는 미련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포기하는 것처럼 되어서도 안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떼지도 못하고 병원 복도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아버지 입만 쳐다보았다. 

“ 마음의 준비 해놓그라.”

아버지 눈물만큼 듣기 싫었던 말이지만 애써 담담한 척 대답했다.

“ 이미 그 전 병원부터 마음의 준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마음의 준비 잘하이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체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준비해야 아버지의 죽음이란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지내던 집안 제사가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고 나서는 작은 아버지가 집안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제사란 것도 아버지가 어느 정도 희망이 있을 때는 성심껏 절을 올릴 때마다 속으로 아버지의 쾌유를 빌었다. 근데 기대여명을 들은 이후로는 더 이상 빌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 괜히 조상 탓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아버지 대신 혼자 참석한 제사가 유난히 씁쓸했다. 그러던 차에 작은아버지가 조심스레 아버지 건강 상태와 아버지 상조나 장례 생각해둔 게 있냐고 물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내가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삼촌네가 결정해 줄 수 없다고. 당연하게 맞는 말이지만 선을 미리 그어버린 것 같은 서운함이랄까? 작은 것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내가 순간 머리가 멍해져 버린 허망함 이랄까? 그런 복잡한 감정을 마음 깊숙이 미리 느껴야 하는 게 마음의 준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 어머니와 논의 해야 일, 아버지와 논의 해야 하는 일을 생각했다. 

상조 보험이 없으니 장례비용과 장례 절차를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미리 예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넓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아버지 관을 누가 들어줄지 고민되었다. 이제는 각자 다 직장이 있고 다 가정이 있으니 부탁하는 것 자체가 부담될 수도 있고 ‘내가 또 누구의 관을 들어준 적 있었던가 ’ 기억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렇다고 나를 잘 모르는 이에게 나의 슬픔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그동안 드시고 싶어 하셨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못 드시게 했던 회를 사드리자고 이제는 진짜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고.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안된다고 펄쩍 뛰셨다. 한 달이라도 일주일이라도 단 하루라도 더 살다 가셔야 한다며. 기적을 믿으시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먼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신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직 마지막이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건지 모르지만 완강하셨다. 무엇하나 정리되지도 않고 이제 아버지에게 물어봐야 할 것들만 남았다. 남은 생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지, 내가 잘못한 것 다 용서해주실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편히 쉬실지.

그런데 그마저도 물어보지도 못하는 그 순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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