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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당마녀 Oct 01. 2022

그 날밤, 오지 않았음 하는 그 순간

아버지 병세는 좋아지지도 그렇게 나빠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작은 암 덩어리가 식도마저 누르자 식사하기조차 불편해하셨고 길고 긴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로 아버지의 식도는 이상 물 마시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지경에 오자 어머니는 링거라도 맞아야 한다며 근처 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입원시키셨다.

코로나 시국에 요양병원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 쉽게 들어오지도 못하고 쉽게 나가지 못한다. 외출은 허락되지 않고 들어올 때마다 코로나 음성 확인을 해야 하는 보호자도 그렇고 병세가 기적처럼 좋아져서 퇴원할 수도 없는 환자도 그렇고 말이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좀 더 드시고 싶어 하셨던 회를 하나라도 더 드시고 편히 가셨을까 하는 후회가 되긴 하다.

입원 관련 서류를 준비하느라 아버지와 통화했었다. 이미 다 시들해진 아버지 목소리는 이제는 내가 알던 아버지 목소리가 아니라 그런지 점점 알아듣기 어려워 겨우 용건만 확인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에 용기가 나서였는지 사랑한다고 불쑥 나왔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확인해보니 이미 통화가 끊어진 상태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우셔서 끊으신 건지 원래 하셨던 것처럼 용건만 듣고 끊으셨는지 알 수 없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음은 오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버지 때문에 같이 식사도 못 하고 그렇다고 외출해서 식사하지도 못하는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사과를 깎아 통에 담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며 코로나가 심해져 어머니 외에는 아버지를 볼 수가 없으니 아버지 안부만 물었다. 괜찮다고 의사소통도 하고 조금씩 드시기도 한다는 어머니의 말만 듣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날따라 너무 반복적이고 나아지지 않는 이런 생활이 답답했는지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바다를 보러 나갔다. 나의 주변 공기와 상황이 차갑게 바뀔 때쯤 전화 한 통이 울렸다. 아침에 만났던 어머니의 전화였다. 잠시 의아함이 내 머릿속을 잠깐 스쳐 가고 곧이어 나의 후회만큼 커다란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통화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통화는 늘 어처구니없는 통화할 이유가 생긴 거니까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기 너머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알 거 같았다.

“ 아버지가 많이 안 좋단다. 오늘 넘기기 힘들 거 같다. ”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확실하게 한 번 더 물어야 했다.

“ 어머니 생각이에요? 간호사 생각인 거예요?. ”

어머니는 더 이상 통화가 어려우신지 옆에 있던 간호사가 대신 대답을 해줬다.

“ 가족분들 전화해서 빨리 병원에 오셔야 할 거 같아요. ”

그때부터 눈물이 차오르고 손이 떨려 연신 머리만 감싸 쥐었다. 몇 번 심호흡하고 나서야 동생들에게 전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 고모에게 당신들의 형, 오빠가 마지막임을 알려야 했다. 내 인생에 그렇게 후회되는 드라이브였다. 가끔 왔던 곳이지만 그날따라 차는 더 막히는 것 같고 그날따라 더 풍경은 보이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아버지 병실에 가보니 아버지는 6인 입원실에서 홀로 힘겨운 호흡만 내쉬고 계셨다. 자가호흡이 어렵고 입안에 거품이 계속 흘러 연신 어머니가 옆에서 닦아주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 손을 잡아주며

“ 아버지 저 왔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많이 기다렸지요?.”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할 힘도 없어 계속 고통스러운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고 계셨다. 내 말이 들리는데 대꾸하려고 더 애를 쓰시는 건지 내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고통 속에 계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아버지의 마지막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슬픔을 커튼 너머 있는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다른 입원환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병원 측에 1인실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병원 측은 그제야 컴퓨터를 몇 번 두드리더니 겨우 2인실로 바꿔 주었다. 2인실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자 괜찮다며 자리를 비켜 주셨다.

그렇게 짐을 다 옮기고 아버지 침대마저 덜컹거리며 다 옮기고 아버지 손을 잡고 있으니 나도 주체하지 못하게 울음이 터져 나올 때쯤 동생 내외와 도착했다. 이제는 나의 슬픔을 양보하고 동생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조용히 나와서 병원 복도에서 엉엉 소리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복도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을 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막내 매부가 다 같이 마지막 인사를 하자며 병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여전히 힘든 숨을 몰아쉬고 있던 아버지는 이제야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슴을 세게 치며 이제는 거의 울부짖으며 말씀하셨다.

“ 내한테 미안하다 말도 안 하고 이렇게 먼저 갈라고 그러냐? 이렇게 갈 거면서....갈라믄 사과 한마디라고 하고 가라. 빨리 눈 떠라.”

어머니의 절규에도 아버지는 평소처럼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듣고 계신 거 같았다. 겨우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사실 진정이란 표현보다는 더 이상 소리칠 기력이 없을 때까 아버지와 겨우 떨어뜨려 놓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아무도 순서를 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아버지 내가 사랑한다고 했던 말 다 들었었지요? 아버지를 제일 존경하고 늘 감사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내 아들로 오이소. 내가 잘해드릴게요. ”

그리고 동생들도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지만 사실 그 뒤로부터는 기억 장치가 슬픔에 젖어서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 날밤 기억이 맞는지 나의 슬픔이 만들어낸 과장된 기억인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언제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지만 절대 오늘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오만과 아버지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후회와 함께 절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 순간이 그날 밤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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