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참 통곡의 시간이 지나자 병원에서는 임종을 지키는 4인 이상 사적 모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어머니만 남고 나의 다른 가족, 동생들과 친척들을 집으로 보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영정사진조차 준비하지 못했던 우리는 동생에게는 본가에 가서 아버지 영정사진을 쓸만한 사진을 찾아보라고 급하게 부탁했다.
남겨진 나는 코로나 검사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이 밤을 아버지와 보낼 수 있다고 하는 병원 측과 검사 결과 나오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부질없는 실랑이를 벌였다. 정부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나도 어쩔 도리가 없어 병원 응급실에 코로나 검사를 하러 나갔다. 혼자 남겨진 김에 끊었던 담배 생각에 병원 근처 편의점을 가려던 찰나 아들 걱정에 담배 피우지 말라고 그랬는지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 방금 아버지 가셨다. 빨리 오니라. ”
다시 길고 긴 병원 복도를 뛰어 아버지를 보니 그전과 똑같이 나를 마중 나와 계셨다. 서둘러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어 보니 피의 온기를 전하지 못하는 손과 얼굴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 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데이. 이제 아프지 말고 좋은 곳 가이소.”
아버지가 아직 들을 거라 믿고 귀에다 속삭였다. 귀가 아니더라도 혼이 되어서라도 내 말을 들어 주실 거 같았다. 드라마처럼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급박한 연출은 없었다. 간호사는 무심히 의료 장비를 정리하고 뒤늦게 당직 의사가 와서 사망선고를 하고 허무하게 내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날 밤 그렇게 돌아가셨다.
나의 남매들과 아버지의 형제, 남매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병원 측에 연계된 장례업자를 만나 아버지를
어디에 어떻게 모실지 상담했다. 장례업자는 화장장 예약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재촉하며 예약이 늦어지면 다른 시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될 수가 있다며 방금 아버지를 잃은 나에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미 어머니는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내가 결정해야 했다.
“어무이 아버지 가까운데 수목장으로 모십시다.”
이미 동생들에게는 그전에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아버지 의견을 묻지 못했다. 아버지 고향에는 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 큰형까지 있으니 아버지는 내심 고향에 가시길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차로 5시간 이상 달려야 그 거리가. 1년에 몇 번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를 그 시간이. 아버지를 보기 위해 큰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 그 마음이. 걸렸다.
어머니는 의외의 선택지에 조금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셨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일단 화장을 먼저 예약했으나 이제는 어디에 장례식장을 해야 하는지 또 결정해야 했다. 상조 보험이 있는지, 머 생전에 봐 둔 곳이 있는지, 장례업자는 취조하듯 물었지만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힘없이 고개만 저었다. 장례업자는 일단 아버지를 모셔야 하니 요양병원 장례식장부터 알아보겠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에 장례식장은 조심스러워 조문객에 식사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괜히 아버지 장례식에 ‘누가 와서 코로나에 감염됐다’라는 말도 듣기 싫었지만 ‘거기는 밥도 안 주더라’ 말이 더 불편할 거 같아 요양병원 장례식장은 포기하고 다시 몇 번의 전화 연결 끝에 동네 근처 장례식장으로 잡았다. 그리고서 아버지를 이불과 천으로 꽁꽁 싸매고 예약된 장례식장으로 장례업자는 먼저 출발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따라오라고 했다. 병원 주차장으로 가는 길 내내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를 기다려야 하는 데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에 운전대 잡은 손이 떨렸다. 사고가 안 난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하고 슬프면서 정신이 없는 상태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다시 결정할 것들이 생겼다.
장례식을 특실로 할 건지, 제단은 어떻게 차릴 건지, 머 종교에 따른 장례 절차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나중에 정산은 어쩌고저쩌고…. 작은 것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또 막상 결정을 해놓고 불안에 떨던 나에게 누가 벌을 주는 것처럼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결정을 나 혼자 해야 했다.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줬음 좋겠다 싶었다.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한참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핸드폰 판매 사장님 말처럼 장례업자의 멍하니 듣던 중 미리 연락받고 장례업 관련 일하시는 둘째 매부의 친척분이 오셨다. 같이 상담을 듣던 중 업자들만 아는 날카로운 질문에 장례업자는 혹시 동종 업계에 일하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 뒤로부터는 친척분과 오히려 협상하는 듯 더 오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열띤 토론 끝에 최종 견적과 장례 내용이 나왔다. 근데 문제는 첫째 매부의 회사에서 가입한 상조회사에서도 고객의 부름에 한달음에 왔다는 거다. 장례업자 측에서는 만약에 상조회사의 서비스를 받는다면 기존 협의가 끝난 직원가 할인을 해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더니 우리도 개인 사업이라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망설이는 나의 마음 꿰뚫어 보듯 그러다 제일 마음에 걸렸던 부분까지 언급하니 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 사촌 형님이 멀리서 이까지 오셨는데. 이왕 이래 된 거 매부 얼굴 생각해서 처음에 협의가 끝난 대로 빨리 아버지를 먼저 모시지요.”
그러자 듣고 있던 상조회사 직원도 물러서지 않고 나를 더 망설이게 하려고 응수했다.
“ 당연히 받아야 할 고객님의 권리를 왜 포기하려 하시는 제 이해가 안 된다. ”
매부들은 자기네들은 전혀 상관없다고 장모님과 잘 상의해서 결정하라고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의리와 실리에 대한 현재 상황을 설명하였으나 어머니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결정해야 하는 그 시간에 첫째 매부를 조용히 불러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사촌 형님이 오셨으니 아무것도 못 하고 돌려보내긴 죄송스러우니 기존 협의했던 장례업자와 진행하겠다고 조심히 이야기해줬다.
자기는 괜찮으니 신경을 쓰지 말라고 짧게 다독거려 주었지만, 나중에 장례를 다 치르고 남매들과 정산할 때 상조를 안 해서 돈이 더 나왔다는 씁쓸한 말을 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