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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당마녀 Oct 03. 2022

뒤돌아보지 말고 나가라. 망자가
미련두지 않도록

그렇게 아버지 모실 준비를 마치고 나의 친구들에게 차마 눈물을 쏟을 것 같아 전화하진 못하고 문자를 남겨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하고 회사 동료에도 인수인계를 위한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아버지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지인으로 추정되는 모든 연락처에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아버지 이름으로 문자를 돌렸다.

받는 지인분이 얼마나 놀라고 황망했을까

상복을 차려입고 상주 완장까지 차고 비로소 재단 위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니 잊고 있었던 감정이 다시 올라왔다. 아버지는 이제는 아픈 곳이 없이 평소에는 잘 보여주지 않으시던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사진 잘 골랐다며 동생을 칭찬하며 다시 가라앉은 분위기를 잡아보려 했지만 물속에 빠지는 작은 모래알처럼 걷잡을 수 없이 다시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에게 술잔을 올리는 첫 재물 상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돌리는 것도 겨우 눈물을 참고 두 번째 절을 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것도 다시 어머니를 진정시키는 것도 말이다.

장례업자는 그래도 금요일 저녁에 3 일상을 시작해서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전하며 이것저것 챙겨갈 것들을 알려주고 돌아갔다. 그중 하나가 고인을 인도하기 위해 피어놓은 향을 꺼뜨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웃고 떠들던 조카들과 딸도 지쳐 잠들고 길고 긴 하루를 보내던 여동생과 어머니도 먼저 상주 방으로 들여보내고 매부들도 각자 고단한 몸을 누울 공간을 찾아갔다. 혼자 빈소에 남은 나는 도저히 잠도 오지 않고 아버지 영정사진 앞에서 허리 펴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그러면서 혹시나 향이 꺼져 아버지가 길을 잃을까 하는 마음에 밤새 향을 붙였다.


아침 재물 상을 지내고 염을 준비하던 장례업자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고인이 기르던 수염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

아버지는 회사를 퇴직하시고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하고 싶으신 건지 독한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머리나 눈썹이 다 빠지고 다시 나면서부터 결심하신 건지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늙어서 추잡하다며 아버지 몰래 수염을 자르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아버지 수염을 지키셨고 자신만의 멋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가는 모습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해드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옆에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단칼에 얼른 대답하셨다.

“ 고마 깔끔하게 다 잘라주이소. ”

이제는 남아있는 어머니의 시간이니까 아버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장례업자는 입관식 시간을 알려주고 돌아갔다. 그렇게 시간을 지나고 입관식을 하러 별도의 공간으로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아버지는 새로 맞춘 고운 삼베 잠옷을 입고 잠든 것처럼 누워 계셨다. 그 모습에 어머니와 동생들은 다시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장례업자는 고인의 얼굴에 소독이 묻어 있으니 주의하라고 일러주고 가족들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남아있는 입관식 절차를 설명하였다. 입관식이 슬픈 이유는 마지막으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 마지막으로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시간. 그런 시간이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란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면서 손을 잡고 아버지 귀에다 마지막 인사를 속삭인다. 그렇게 눈물바다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 얼굴을 두건을 감싸려고 하면서 아버지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다시 어머니는 안 된다고 한 번만 더 보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겨우 붙잡고 장례업자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꽁꽁 몇 겹을 싸면서 또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 고인의 몸을 억지로 펴다가 뼈가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는데 저승길 가서는 좋은 모습으로 가실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우리를 걱정하는 건지 자기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싸고 나서 상주인 나와 함께 아버지를 옆에 세워진 관으로 옮겼다. 그 관도 매부 사촌 형님 때문에 할인받은 비싸고 좋은 관이라고 빼먹지도 않고 굳이 설명해주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사후에 찾아가야 할 7개 지옥 안내도 같은 걸 관 속에 넣어주고 그때마다 요긴하게 잘 쓰라고 준비해둔 노잣돈을 가족들이 넣으면서 입관식은 진행되었다.


마지막 절을 올리고 관 뚜껑까지 닫고 아버지를 한 바퀴 돌면서 입관식이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돌아보는 모습에 망자가 미련을 두고 저승길에 오르지 못할까 봐 말이다. 그렇게 미련 없이 나가서는 곧장 화장실을 가서 나쁜 귀신이 붙지 않도록 귀와 눈을 씻어야 한다고 했다.

울음을 참고 겨우 서 있던 상주인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등을 돌려 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들어가 토하듯이 내뱉었다

“ 씨발 이딴 게 뭐라고.”

아버지를 더 보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아쉬움과 내 등을 보고 있을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야 하는 이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 토해낸 말이었다. 이미 눈물로 마스크가 다 젖어버려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서 마스크를 거칠게 벗어버리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또 하는 수 없이 눈과 귀를 씻고 있는 거울 속에 있는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고 한심하게 보였다.

그렇게 하나둘 입관식을 보던 가족들이 화장실로 모여들었고 모두가 충혈된 눈으로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문을 열고 먼저 나가는 순서는 있지만 그 순서와 각자 눈물의 크기는 상관이 없기에 나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인 걸 다시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의 예를 갖추기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우리의 슬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너무 슬퍼하지도 않고 너무 웃는 얼굴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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