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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당마녀 Oct 04. 2022

제일 슬플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러니

아버지를 보내고 첫 번째 밤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는데 두 번째 밤은 몸이 피곤해서인지 지친 몸을 누울 공간을 찾아 쪽잠을 자기도 했다. 푸석해진 머리와 까끌까끌해진 수염이 오늘이 3일째 아침임을 알려줬다. 장례지도사는 출상 시간과 마지막 제사 시간을 뻐꾸기시계처럼 알려주고 금방 사라졌고 아버지와 떠나기 전 마지막 발인 제사를 지냈다. 마침 정종이 떨어져 마지막 잔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소주로 제사를 올렸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을 암 선고받으시고 입에도 대지 못했던 소주를 이제야 맛을 보셨다. 

“ 아부지 너무 오랜만에 술 한잔하시지요?” 겨우 울음을 참고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장례식장을 정리하고 남은 정산 이것저것을 마무리하고 아버지 관을 들어줄 친구들도 모이고 아버지와 같이 떠날 버스도 도착했다. 3일 동안 그래도 우리 옆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먼 길을 떠나실 준비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머니와 동생들은 벌써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잠든 아버지가 놀라실까 봐 관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 아부지 이제 가입시더. ”

장례식장에서 버스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우리 옆에 타지 못하고 짐칸처럼 생긴 좁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셨다. 또 그 모습에 울컥해서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버스 칸이 닫히면 이제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이 없을 거란 생각에 급하게 그동안 맘에 걸렸던 말을 아버지에게 다시 소리쳤다.

“ 아버지 그날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많이 기다렸지요. 이번엔 내 기다리지 말고 좋은 데 가이소. ”

 그렇게 다시 덜컹거리며 아버지가 가고 싶어 했던 아버지 집으로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그 긴 버스가 다시 후진해도, 아버지 집 가는 길에 방지턱에 덜컹해도 밑에 있는 아버지 걱정뿐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우리가 집에 돌아왔다. 잠깐일 줄 알았던 아버지 외출이 먼 길을 돌아 돌아 이제야 겨우 도착했다. 아버지가 먼저 앞장서고 뒤따라 들어가자 혼자 3일 동안 집을 지키고 있던 강아지가 뛰쳐나왔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간식을 챙겨주고 뒷정리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 강아지가 자꾸 다리를 누르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의식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거의 처음 아버지를 보낼 때처럼 울다 지치다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시는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으셨다. 집을 들어가기 전 장례지도사는 나쁜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집에 안 쓰는 그릇을 깨고 오라고 일렀는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그릇을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며 산산이 그릇을 깨서야 겨우 집을 나오셨다. 이제 버스는 가장 슬플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거기에는 많은 사연들이 저마다 슬픔들이 다 모여있었다. 뜨거운 화로는 정해져 있고 돌아가신 분들은 각지에서 몰려드니 무한정 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타지방까지 가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했던 장례지도사 말이 떠올라서 쓴웃음이 났다. 버스 주변에서 서성이던 아버지의 가족과 나의 가족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서류가 없으면 화장이 어렵다는 말에 겁이 나 상복 가슴 안주머니에 계속 손이 가게 했던 서류들을 들고 접수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 차례가 되었다. 그제야 아버지도 어둡고 쓸쓸했었던 공간에 나올 수 있었다. 다시 아버지 뒤에 줄을 서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길처럼 느껴졌다. 입관식을 할 때는 마지막으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라 슬프다면 오늘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귀마저 한 줌 재로 사라질 것이라는 절망이 섞인 슬픔이었다. 이미 어머니와 동생들은 실신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마지막 아버지를 쓰다듬으며 좋은 데 가시라고 다시 속삭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의 울음소리를 뒤로하며 혼자 들어가셨다. 우리는 모니터가 연결된 로비 같은 곳에서 대기했다. 예전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관이 화로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불이 옮겨질 때 상주인 외삼촌이 고인이 놀라지 않게

 “ 아버지 집에 불났습니다 ” 크게 소리쳤던 게 기억이 났었는데 여기 화장장은 모니터에 ‘준비 중’ 이란 표시만 들더니 이내 ‘화장 중’이라고 바뀌는 것 말고는 달라지는 게 없는 허무한 화면 뿐이었다. 마지막 절을 올리고 지금 말고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다는 장례지도사 말에 따라 남은 가족들에게 식권을 지급하고 이것저것 지출하고 다시 정산하니 눈물이 흐를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에게도 뭐라도 드셔야 한다고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 너거 아버지는 안 그래도 더운 거 싫어하는 양반인데 너는 자식이 되어가 밥이 넘어가나?”

어머니는 수목원으로 가자고 했던 나를 원망하듯이 쏘아붙이며 소리치셨다. 어머니가 어떤 상태인지는 이해는 되었으나 마음속 자리 잡고 있던 후회, 불안 이런 감정들이 상처가 돼서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그래서 얼른 자리를 피하고 동생들한테 그래도 어머니 밥을 드시게 하라고 당부했지만 끝끝내 식사하지 않으셔서 두유라도 손에 쥐여 드리고 혼자 바람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까 그 모니터가 이제는 ‘화장 완료’라는 메시지가 뜨자 다시 아버지를 보러 갔다. 아버지는 아까보다 더 작아진 모습이었다. 화장을 했던 직원은 타지 않은 남은 작은 조각들을 내게 보이며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보았다. 간혹 금니 같은 귀중품은 다시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엇인지 직원도 쉽게 짐작하지 못해서 우리에게 난감한 듯 물었다. 우리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겨우 아버지 허리디스크 수술할 때 썼던 작은 철심인 걸 알았다. 결국 아버지한테 남은 건 보잘것없는 그런 철 조각뿐이라 생각하니 또 울컥해져서 겨우 참고 말했다.

“ 이제는 필요 없으실 테니 다 같이 버려 주이소. ”

내 말을 들은 직원은 다시 무덤덤하게 아버지를 모으고 모아서 빈 상자에 담아주셨다.

아버지 살아생전 손을 잡아드릴 때처럼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아버지랑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신 이번에는 나와 함께 내가 아버지를 꼭 안아주면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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