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항암치료는 좋아지다 나빠지다 그렇게 반복하며 아까운 아버지 시간만 보내고 있는 줄 모르고 이제는 괜찮아 지겠지 막연한 기대만으로 하루 이틀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인생은 그런 막연한
기대만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고 알려주 듯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일하던 중 늘 걸려오던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 야 야 큰일 났다. 아버지가 이상하다. 지금 빨리 여기로 오니라. ”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그것도 잠시 바쁜 회사 일을 어쩌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 와중에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나 자신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급하게 두 분이 있는 곳으로 가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아버지의 긴 호흡 소리와
함께 쉬고 계셨다. 어머니와 집 근처 산책하러 가다 아버지가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더 이상 안 되겠던 지 그제야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일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를 부축해서 겨우 집 근처까지 오고 있는데 아버지도 정신을 겨우 붙들고 있던 게 힘에 부치셨는지 어느 순간 눈에 초점을 잃으며 축 처지기 시작하셨다. 놀라서 겨우 다시 길바닥에 앉혔고 놀란 어머니는 정신을 다시 붙잡으라고 연신 아버지 뺨을 때리며 소리를 치셨고 1초 2초 그 긴 찰나가 지나도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자 아버지 얼굴이 빨개지는 만큼 어머니 눈도 빨개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물어보니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이 오는 줄 알고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뺨을 더 세게 때렸다고 하셨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되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119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버튼을 누를 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하얘지지는 것 같았는데 막상 119구급대원과 통화하는 순간부터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수화기 음성에 따라 아버지 상태를 확인하니 미세하게나마 숨은 쉬고 계셨고 맥도 잡히는 것 같았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에 해방되었다고 할까? 이제는 119대원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다시 아버지가 정신을 차릴 실 것 같았다.
그렇게 119구급차가 와서 아버지를 태웠지만 야속하게도 코로나 시국에는 보호자가 1명밖에 대동할 수 없어 어머니를 태워 보내고 덩그러니 나 혼자 길가에 남아 쏟아지는 주변의 관심을 받으며 비로소 제대로 된 긴 한숨을 쉬었다.
몇 일 후 항암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다음번엔 아들과 같이 오라는 통보를 했고 또 회사 눈치에 반차를
겨우 내서 병원을 따라갔다.
담당 의사는 알 수 없는 사진들만 나열하고 임파선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인지, 자기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달라는 건지, 긴 시간을 설명을 끝내고 일어서려는 찰나. 겨우 이것 때문에 나를 부른 건가 의구심이 들 무렵
“환자분은 피검사 하러 가시고 환자 보호자는 잠시 면담 좀 하시죠.”
그때부터 몽롱했던 정신이 들었다. 앞에 이야기했던 지루했던 경과를 다시 설명했지만 이번에는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귀에 꽂히는 마지막 문장.
“ 기대여명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다.”
그때부턴 다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대답해야 하는지. 질문을 다시 해야 하는지 얼굴을 감싼 채 겨우 다시 질문을 했다.
“ 기대여명이란 게 치료를 잘 받아도 아버지의 남은 여생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렇다면 얼마나 남으신 건지?”
담당 의사도 본인의 환자가 그렇게 된 것이 죄스러운 마음인 건지. 사무적인 난처함인 건지 힘들게 대답을 해줬다. 최악의 결말을.
“ 길어야 6개월 짧으면 3개월. 지금으로선 3개월일 가능성이 크다. 항암치료가 내성이 생겨서 계속 치료해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까보다 더 정신이 몽롱해졌고 담당 의사가 이 이야기를 나한테만 하는 이유도 명확해졌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치료 중인 아버지에게 전달할지 말지 그 숙제를 나에게 준 것이다. 다시 만난 아버지는 왜 나만 따로 불렀는지 내심 궁금하셨는지 불안한 눈으로 물어보셨다. 최악의 상황이 아닌 나의 희망이 담긴 차악의 상황만 추려서 말씀드렸다.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고, 앞으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해야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회사 핑계로 반차를 냈던 나는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그렇게 나온 병원 주차장에서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
최악의 상황을 내 입으로 말하면 내가 못 견디게 두려워서인지 동생에게도 차악의 상황만 전달했다.
“아버지 6개월 남았단다.”
내가 뱉었던 허망한 그 숫자를 내가 귀로 들으니 잊고 있었던 슬픔을 다시 울컥하게 했다. 그래서 또 도망치듯 전화를 끊고 병원 주차장에서 주저앉아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 기도했다. 제발 아버지 남은 생이 6개월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 망할 기대여명만 기대할 수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