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암이 재발하였다고 한다. 충격과 절망도 내성이란 거 있는 것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오히려 무덤덤했다. 어머니가 가끔 아버지가 우셨다고 안부를 전해도 마음 한구석 답답한 무언가 자리하고 있음만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 암 수술 들어갈 때도 애써 밝으셨던 당신이 막상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에 누워서 같은 병실 사람들 응원 속에서도 천장만 보시며 아마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장으로써의 미안함. 그리고 후회. 그런 감정들이 뒤엉켜 눈물을 흘리셨다. 안쓰러운 마음에 아버지의 거친 손을 잡아 드렸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이 멀게만 느껴져서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회사 눈치로 평일에는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주말에 겨우 딸아이와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신 병원에 찾아뵈었다. 고새 일주일만큼 더 늙으신 아버지는 터벅터벅 걸어오시며 오지 말라고 했는데 괜히 말을 듣지 않고 왔다면서 잔소리하셨다. 내 딸은 그런 눈치도 없이 더 해맑게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인사를 했다. 그런 손주의 재롱에 마음이 약해지셨던지 이내 말씀이 없으셨다. 대신 연신 기침만 하시더니 1층 로비 병원 기둥에 잠시 쪼그려 앉아 망연자실하게 겨우 한마디 하셨다.
“ 너무 많이 퍼져 단다.”
그러면서 이내 눈물 한 방울을 흘리셨다. 그 망연자실함에 문득 나도 드디어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리 멀지 않다고. 그때부터 실감 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눈물에 딸아이가 놀랄까 봐 서둘러 먼저 아내와 차로 보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눈물이 아니라 내 눈물에 놀랄까 봐 서둘러 아내와 딸아이를 보냈던 거 같다. 아버지 눈물에 죽음을 실감했던지 지금이 아니면 영영 후회할 것 같아 그랬는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그러니 이번에도 이겨 낼 수 있다고.”
아버지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아버지 때문에 울어선 안 되는 거였는데.
이미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겨우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그렇게 말하고 떨리는 호흡으로 인사하고 먼저 돌아섰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깊은 심연 속에서 겨우 다시 물 위로 떠 올라 호흡하는 것처럼 막을 수도 없이 슬픔이 차올랐다. 가끔 책이나 영화를 보면 슬픔을 토해낸다고 표현하는데 아주 정확한 표현인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몰랐던 내 밑바닥 감정이 메스껍다가 순식간에 뜨거운 것이 내 얼굴에 모든 구멍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길가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쏟아내면서 부족한 산소를 다시 들이키려고 하지만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거친 숨소리로 겨우 한 모금 길게 호흡해본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처럼.
그렇게 겨우 진정되자 그제야 아버지가 나를 보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아직 눈물을 훔치고 있을까? 걱정되어 다시 1층 로비를 살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는지 다행스럽게도 보이지 않으셨다. 다시 병원 근처 벤치로 돌아와 멍하니 마음을 식혀본다. 마른 가지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철없던 시절 더 따듯한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를 소망했던 적도 있었다. 고된 일을 마치고 늘 술을 찾으시던 아버지, 또 그게 싫어서 늘 싸우시는 어머니와 싸우는 아버지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야 내가 딸아이를 키워보고 인생을 살다 보니 따뜻하고 자상한 말 한마디가 자존심 때문에 그런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또 인생이란 게 늘 좋은 기억만으로 지낼 수도 없고 그렇게 마냥 웃을 수도 없는 그런 곳이라고 깨닫게 된다. 인간은 지킬 게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아지는 것이며 또 잃지 않기 위해 더 매달리고 작은 거 하나 잃을까 불안해하기 마련이니까.
나도 몰랐던 감정이 울컥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초라하고 지킬 것이 없는 마른 가지라 생각했는데. 그 마른 가지조차 나에게도 작은 그늘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딸아이를 보자마자 또 마음이 울컥해진 걸 겨우 참아내려 다시 한번 흔들리는 가지를 본다. 저 흔들리는 마른 가지도 언제가 풀 내음이 가득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