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원에 있는 경남 교육연수원에 출장을 다녀왔어요. (SRT에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오후 네 시간 동안, 경남교육청의 혁신학교인 '행복학교' 직무연수에서 '민주적 학교문화 만들기'를 맡아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주제 중의 하나인 '민주적 회의 문화'에서는 드라마 <블랙독>의 5, 6화에 나오는 부장회의와 전체 교사회의 영상을 보고 모둠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심화반 '이카로스' 개설에 관한 하향식, 전달식 회의 장면이었지요. (학교에서도 교사 워크숍 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의 학교와 영상 속 학교와의 차이점과 공통점, 회의의 개선 방안에 대해서 토의했는데, 경남의 선생님들 역시 삭막한 시청각실에서 소수만 발언하는 전달식 회의가 아니라, 모둠별로 서로를 마주 보며 대등한 관계 속에서 민주적으로 토의하는 워크숍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대치고의 문제점을 일방적으로 지적하면서 호통을 치는 박성순(라미란) 진학부장 역시, 회의에서 마이크를 독점하는 비민주적인 모습을 보여준 점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드라마 <블랙독>에 나오는 대치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학부가 아니라 '혁신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학부 선생님들이 아무리 대입 전형과 학생들의 입시 결과를 분석하고 개선안을 제시해도, 학교의 교사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면 '동상 걸린 발에 핫팩 붙여주기'가 될 뿐입니다. 교사들의 참여와 소통을 보장하는 협력적 문화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원하는 전문적 학습공동체와 수업공개, 교사연구회와 같은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진학부가 매일 야근하며 입시설명회를 준비하고 서울대 입사관을 불러와도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기차에서 본 <블랙독> 9화의 고3 학부모 입시설명회 장면에서 정말 많이 실망했어요. 비인기 학교인 대치고가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심화반인 이카로스를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장면에서는 혈압도 상승했고요. (드라마일 뿐인데 너무 몰입한다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도 계셨는데, 차분하게 감상평을 쓰려고 해도 대치고에서 근무하는 한 명의 '벌떡 교사'가 된 것처럼 감정적이 되네요. 어쩌면 이런 의미에서 잘 만든 드라마인 것 같아요. ㅋㅋ)
10화에는 드디어 문제가 터집니다. 심화반 자습실이 테러를 당한 것이지요. 책과 노트를 바닥에 던져놓고 물도 뿌리고, 사물함에는 붉은 글자로 '이카로스 죽어'라고 섬뜩하게 적어놓았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들이 곧 만나게 될 사회의 모습이 강자에겐 너그럽고, 약자에겐 가혹한 것이 현실인데 학교마저 차이가 없다면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을까요? 약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문화, 배려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의 존재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런 것 없이 제도적인 민주주의와 절차적인 공정성을 강조해도 학교든 사회든 제대로 발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글에 썼듯이, 다시 한 번 대치고의 심화반 '이카로스'의 추락을 통해 드라마 <블랙독>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학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고민을 던져주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