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담임의 편지
- 혁신학교 첫 해 만들었던 학급신문 중에서
올해 오랜만에 담임을 맡게 되어, 예전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덕고에 왔던 첫해, 고2 담임을 하며 학급신문에 특집으로 쓴 '담임의 하소연' 파일을 열어보고 창피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만감이 교차했어요.^^; 2010년 EBS '학교란 무엇인가'에 등장했던 1회 입학생 아이들을 2011년에 담임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교사로서 무력감, 자괴감이 무척 심했습니다. 수업도 담임역할도 기본조차 하지 못해서 혁신학교에 지원해서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요. 비평준화 지역의 신설 고등학교라 힘들 것을 예상했지만 EBS 다큐보다 리얼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쳐갔습니다.
그래도 1주일에 한두 번씩 학급신문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바닥에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이 가고 난 후 혼자 서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답답한 마음에 뻔한 잔소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듣기 좋은 문구 말고, 제 속마음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졌나 봅니다.그래서 담임의 하소연을 1면에 실은 학급신문을 아이들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려놓고 퇴근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다시 돌아온 흥덕고에서도 아이들에게 때로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간대 인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또 아이들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진실은, 진심으로 주고받는 대화 속 어딘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으면서요.
민수샘 이야기 혹은 하소연 (2011년 5월의 어느 날)
샘은 요즘도 고민이 많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걱정도 많다. 그래서 가슴도 답답하다.
3월부터 계속된 증세인데, 집에 가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집에 가는 것은 또 다른 출근이다. 집안일, 육아, 장보기 등등 ㅎㅎ 학교에 있을 때가 오히려 나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단다. 슬프지....)
여러 고민 중에 가장 중심은 역시 ‘혁신학교란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대부분 우리 학교만 경험해 봤겠지만, 나도 아주 먼 옛날 고등학교를 다녔고, 여기 오기 전에 세 개의 학교에서 근무했었다.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는 수업과 보충수업, 야자 이 세 가지가 90%를 차지한다.
나머지 10%는?
형식적이고 다양하지도 않은 CA, 동아리 활동들, 이것도 고3 되면 시간표에는 있지만 자습만 한다.
그리고 놀이공원에 애들 풀어놓고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밥 먹고 술 한잔하고 노는 소풍.
여행사만 좋은 일 시키는 수학여행과 쓰레기 몇 개 줍고 끝나는 단체 봉사활동.
2년에 한 번씩 학생부에게 기획하는 장기자랑과 몇 개의 전시회가 전부인 축제가 전부다.
대한민국 99%의 고등학교가 그래도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도 답을 안다.
고등학교에서의 3년은 오로지 대학을 가기만 위해 있는 것이다.
학교 시험과 수행평가로 내신 성적으로 일등부터 꼴등까지 나누고, 수능 준비를 시켜서 같은 나이의 5, 60만명을 또 1등급부터 9등급으로 나눌 수 있게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 학생이 공부 못하는 것은? 다 그 사람 탓이다. 게으르거나 놀기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교사나 학교는 아무 책임 없다. 그래서 도움을 주지는 않고 계속 학생들을 갈군다. 야자 때 엎어자든 딴 짓을 하든 무조건 학교에 붙잡아 논다. 그래야 교사 마음이 편하니까.
17살부터 19살까지의 우정과 사랑과 꿈찾기, 그리고 크고 작은 도전과 성취와 성공의 경험은 단순히 대학가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에서 아예 하지 않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나머지 10%를 진짜로 하려고 하는 학교다. 그래서 ‘혁신학교’인 것이다.
그래서 보충수업이나 야자감독이 줄었는데도 선생님들이 더 바쁘다.
최근의 농촌봉사활동, 직업체험, 인문학 아카데미, 진로 특강, 상담 프로그램 등도 몇 시간에서 며칠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다른 학교 보다 조금 많은 여기저기 버린 쓰레기와 다른 학교에는 없는 담배꽁초도 주어야 되고, 교무실에 앉아 휴지 빌리러 오는 분(?)들도 기분 상하지 않게 대접해야 한다.
우리 학교 교사 입장에서 하소연을 좀 적어 봤다. 그러니 여러분이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에 더 많이 참여하고, 또 가장 중요한 학교 수업과 수능 준비에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난 진심으로 공부를 잘하지 못 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서로 존중하고 도와주며, 이 글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더 잘 알게 되면 좋겠다.^^
끝으로,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날 위로해 주겠는가?
바로 여/러/분! 앞으로 대화와 상담을 더 많이 하자고!!!
‘혁신학교가 뭐 이래?’, ‘우리 학교도 다른 학교란 똑같아진다’라고 불만이 많다는 것도 안다.
우리 학교는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그런 흔한 학교와는 다른, 새로운 학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니 다른 글은 별로 읽고 싶지 않지? 사실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도 많았다. 2학년 2반 여러분들을 만났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