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정 결석'을 '인정'할 수 있을까?

-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by 글쓰는 민수샘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있습니다. 몇 달전부터 책꽂이에 있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어요. 왜 슬픈 예감이 틀린 적이 없나, 하는 노랫말도 있듯이 책을 읽으면 너무 슬프고 미안해 질 것 같아서 그랬나 봐요.

그러다가 휴업일 과제로 담임반 아이들과 '17일의 도전'을 하면서 책 표지를 넘기게 되었지요. 작년 가을에 은유 작가님의 강의를 직접 들으며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들었지만, 새롭게 와닿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2014년 당시 고3이던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CJ 제일제당에서 일하던 김군은 회사에게 가장 약자였습니다. 장시간 노동이 끝나고 억지로 회식에 참석해야 했고, 담배를 배워야 했고, 일을 못한다고 작업장과 기숙사에서 선배에게 군대식 폭력을 당했습니다. 동준 군의 어머니는 회사에 가기 싫다는 아들의 등을 떠민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오열했습니다. 은유 작가는 어머니와의 인터뷰 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 “쓰러져도 회사 가서 쓰러져라" 우리 세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다. 힘들어도 참는 게 인생이라고, 가기 싫다고 안 가면 인생 낙오자가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너나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었을까. 지금에야 그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미인정 결석'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담임을 맡으면 버릇처럼 생기부 조회에서 '출결상황'을 제일 먼저 눌렀지요. 마음속으로 미인정 출결 칸에 숫자가 적혀있는 아이들이 많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첫 담임시간에도 "출결만 좋아도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러니 모두 개근하도록 노력하자"라고 강조했던 기억도 났습니다.

물론 3월 말쯤 되면 전화를 해도 안 받고 점심시간에 등교하는 아이도 생기고,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고 그냥 집에 가버리는 아이 때문에 혈압이 상승합니다.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었다며 수업에 안 들어간 알리바이를 대는 아이도, 엄마나 아빠와 싸워서 학교에 올 기분이 아니었다며 결석한 이유를 태연하게 말하는 아이도 기억나고요.

그런 아이들에게 저는 '출결을 점수에 반영하는 대학이 많다'라는 말을 거의 빼먹지 않고 말해주었던 것 같아요. 출결상황이야말로 성실함을 증명하는 첫 번째 요소인데, 성실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뻔한 소리를 했었지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는 한두 번 정도의 미인정 결석이나 대여섯 번 정도의 미인정 지각, 조퇴, 결과를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어른도 다음날 출근이 두려운 밤과 사무실의 문을 여는 것이 두려운 아침이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데, 10대 아이들이야 오죽할까요?


%EC%BA%A1%EC%B2%98_%EC%B6%9C%EA%B2%B0%EC%A0%90%EC%88%98.PNG

기사를 검색해보니 미국의 어느 주에서는 이유를 묻지 않고, 증명 서류를 내지 않고 3~5일 정도는 결석할 권리를 학생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한 몸 마치는 산업전사를 길러내는 시대도 아닌데, 출결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찍고 처벌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쓰던 '무단'도 그렇지만 '미인정'이라는 어휘 자체에는 폭력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 권력을 가진 저는 코로나19 휴업일에 아이들과 카톡으로 상담하면서 '1, 2학년때 지각을 많이 했네. 3학년때는 개근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몇 번 했습니다. ㅠ.ㅠ 단순히 잠이 많고 게을러서 그런 것만은 아닐텐데요. 개학하고 만나면, 학교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학교를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듣고 마음속으로라도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은유 작가가 지적했듯,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학벌주의와 격차사회의 문제점, 노동의 존엄성, 차별과 혐오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토의하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일부라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또 학교에는 직업교육 위탁 학생들이 많습니다. 제가 맡은 반 아이들이라도, 학교에 오는 날이면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노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 현장실습생이 아니더라도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거나 안 하던 업무를 맡은 경우 낯선 환경에 던져서 현장실습생이 된다. '적응'이라는 이행기를 거쳐야 한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잠재적 실패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수용한다면 현장실습생의 죽음이 더 이상 신문에서나 보던 얘기가 아니게 된다.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살면서 그다지 실감하기 어려운 명제지만, 자기 아픔을 용기 내어 이야기하면 타인의 아픔이 들리기 시작하고 모든 존재의 고통에 연결돼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00321_224731834_02.jpg



KakaoTalk_20200321_224731834_01.jpg


KakaoTalk_20200322_095927709.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는 <17일의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