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특강 국어영역 독서편으로 수업을 하다가, 요즘 수업을 할수록 힘이 빠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가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우(encounter)', 즉 만남과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문화05 '현대 사회에서 개인 간 상호작용'을 다룬 글에서는 타인과 조우하는 상호작용을 일단 시작하면 누구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노력하게 되는데, 이런 사회적 자아 이미지를 '공안(公顔)'이라고 설명하고 있네요. (쉬운 이야기를 항상 어렵게 전달하는 지문을 어디에서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그 탁월한 능력에 늘 놀랍니다^^;)
이 글에서는 타인과의 '조우'를 통해 저마다 긍정적인 '공안'을 만들고, 도덕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서로의 긍정적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한 사람들의 의무를, '성스러운 게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일제식 자리배치'를 하고 모둠으로 만나 대화를 못 나누게 되어 성스러운 게임도 중단되었지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고등학교 교실에서 서로의 긍정적인 공안을 지켜주는 것이 힘들 것 같은 우울한 예감이 계속 드네요. 바이러스가 사라져도, 예전처럼 책상을 돌려서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해결하는 모둠활동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고3 교실에는 수능을 봐서 정시에 지원하겠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학교 내신과 생기부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대놓고 다른 과목 공부를 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수행평가도 백지를 냅니다. 모둠활동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공안을 벗어던지고 교실에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고1부터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지금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또 수시에 지원하는 아이들이 모둠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노력을, 생기부를 위한 가식적 행동으로 비판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고등학교는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곳이고, 입시의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데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느냐고 따질지도 모르고요.
아무리 양보하려고 해도,'단기간의 정시 확대를 통한 입시의 획일화'는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문제의 <보기>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는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협력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정시 위주의 입시 제도의 확대는, 교실 속에서 아이들이 만들어 왔던 긍정적인 '공안'마저 버리게 만들고, 저마다 자기 살 길을 찾아 외롭게 싸우는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 뿐입니다. 모둠활동은 물론이고, 학생자치와 봉사활동도 사라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학교의 학원화라는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수시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고치고 보완하면 되는데, 정체가 불불명한 여론에 떠밀려 정시를 대놓고 확대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생기부를 위해서'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 좋은 가면을 쓰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지켜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보기>에서 말했듯, '공안과 자아의 실체 사이의 간극이 드러나 공안으로 연출된 자아가 유지될 수 없다면 창피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교육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지, 한 번의 시험으로 수십만 명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을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