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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문학을 독해하라고?

- 수능 국어영역 문학 문제풀이 비법에 대한 다른 생각

by 글쓰는 민수샘

2학기 고3, 독서 과목을 수능 문학을 대비하는 시간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튜브에선 수능 문학 문제풀이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 궁금해서, 좀 둘러보았지요. 어느 서울대생의 유튜브를 보다 보니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었지만, 아래의 말은 조금 거슬렸어요.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으로 독해하라.>


감으로 찍지 말고, 느낌대로 풀지 말고 지문 속에서 근거를 찾아서 답을 찍어내는 연습을 하셔야 돼요. 문학 개념 공부 충분히 하고, 그다음에 기출을 많이 돌리다 보면은 차차 평가원이 바라는 독해의 방향이 무엇인지가 파악이 돼요. 그래서 나의 느낌이나 생각은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글을 읽어내고 분석하는 힘을 기르세요.


이 말은 일부는 맞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위험한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문제풀이의 결과만 놓고 보면,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작품 전체를 제대로 읽지 않고, 어휘나 문장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고,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성급하게 대충 '감으로' 찍는 경우가 많긴 하지요. 그렇다고 비문학 독해도 아닌데, 문학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독해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흥미도 떨어뜨리고 길게 보면 결과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이 영상의 댓글을 봐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독해하라'라는 주문은 어린 학생들이 오해하기 쉽고, 문학 공부에 대한 공포를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즐기세요! 열심히'라는 대댓글이 있어서 반가웠어요.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지문 속의 근거에서 찾아 올바르게 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문제를 푸는 학생의 주관적 생각과 느낌이 아주 깊숙이 개입되어야 하고, 작품을 통해 시의 화자나 소설의 인물과 대화하면서, 생각과 감정이 자라는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무조건 '기출을 돌리고 돌려서'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수능에 출제되는 문학작품은 시간과 공간, 신분과 나이와 성별 등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문제를 형상화한 글입니다. 특히 고전문학 작품은 수백, 수천 년 시간을 건너오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건드리고 감정을 흔들었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철저히 객관적으로 독해하라'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시문과 문항에 근거해서 풀라는 의도를 잘못 받아들여서,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학년의 국어 수업에서 문학 감상과 표현 활동을 충분히 하면 되고, 고3 때는 문제 푸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분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려운 수능 문제를 붙들고 기계처럼 앉아서 답을 찍어내고 있는 학생의 모습은 너무 외롭고 슬퍼 보입니다. 수능을 보기까지의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으로 작품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시에서는 먼저 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화자가 살아온 삶을 상상하고 특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감각'을 깨우고 '내 머리'로 상상해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의 표현 속에 숨어있거나 다 말하지 않은 화자의 정서와 태도를,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가진 '나의 느낌'을 불러일으켜서 공감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한 편의 문학작품 속에 들어있는 '한 인간의 보편적이고 특수한 삶의 모습'을 스스로의 '감'으로 느끼고, 작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이지요.


문학이 원래 이런 것인데, '나의 주관'을 배제하고 어떻게 제대로 감상하고 분석해서 문제를 풀 수 있겠어요? 이런 주문보다 어휘, 문학 용어, 역사, 철학과 윤리 등에 관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쌓고, 정말 생소하고 어려운 작품을 만나면 문제풀이는 잠시 미루고 작품을 여유 있게 여러 번 읽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을 많이 갖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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