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코로나 블루 없는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네

- 퀴즈앤 활용 문학 수업이야기

by 글쓰는 민수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도 걱정이 많고 힘든 2020년이지만, 선생님들도 대부분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우울한 수업' 때문이겠지요. 제가 가입한 온라인 수업 관련 단톡방만 세 개이고, 요즘도 하루에 수 백 개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갑니다.


어떻게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온라인 수업을 만들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는 기술적 차원을 뛰어넘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새로운 수업 디자인'에 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 역시 고3 2학기가 되니 다른 할 일도 많고 지치기도 해서 안이한 생각이 들어라고요. 수행평가도 대폭 줄었고, 두 번의 지필 평가를 위해 강의 중심으로 진도를 나가고 출제나 문제없이 잘 하자는 유혹이 생긴 것이지요.


하지만 이래서는 저부터 '코로나 블루' 증세가 더 심해질 것 같아서, 퀴즈앤으로 문제를 풀며 활동하는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퀴즈 문제에 제한 시간을 설정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여유있게 문제를 풀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찾자는 바람을 아이들에게 전했지만, 1차시의 수업디자인은 엉성한 점이 많았어요. 배움의공동체에서 말하는 3단계 수업디자인에서, 제대로 된 홉(hop)과 점프(jump)가 없이 스텝(step) 단계의 질문만 많은 구성이었지요.


모둠활동을 못하는 거리두기 교실 수업이지만 '홉(도입)-스텝(기초)-점프(심화)' 단계에 맞는 적절한 질문과 활동을 배치해야 했는데, 새롭게 알게 된 온라인 퀴즈 사이트의 잔재미에 빠져서 급하게 질문을 만든 것 문제였습니다. 1차시의 제재였던 이휘일의 시조 <저곡전가팔곡>은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살다가 간 작가에 대해 흥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지만, 그냥 제가 몇 마디 하는 것으로 홉 단계를 때웠습니다. 스텝에서는 현대어 풀이를 위한 괄호 채우기와 표현법 찾기, 사자성어과 연결 짓기를 하며 너무 친절하게 힌트를 많이 줬어요. 점프과제로 준비한 질문은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을 적어보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 수업한 학급에선 서술형으로 냈다가 어려워해서 그 다음부터는 선택형으로 바꿨답니다...






2차시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시인 정약용의 <보리타작>이기도 해서, '홉-스텝-점프' 수업디자인을 제대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홉에서는 문학 작품이 지닌 가치나 흥미로운 점을 만날 수 있도록, '보리타작은 1년 중 언제 할까?'라는 가벼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당황해하기도 하고, 그것도 모르냐고 구박하는 아이도 있어서 수업에 생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보릿고개'와 연결해서 작품을 읽으며 <보리타작>이 농민들에게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스텝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주고,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서 구성단계와 내용을 연결해서 순서를 맞추는 질문을 했습니다. 교재가 없는 아이도 친구 책을 잠깐 빌려 보거나, 검색도 하면서 정답을 맞히기 위한 승부욕을 보이더군요.


점프 과제는 '<보리타작>의 작가 정약용이 지향하는 삶을 모습을, 작품 속 어휘를 1~2개 활용하여 청유형의 문장으로 완성해 보자.'였습니다. "흥덕고 학생들, 행복하려면 ~ "라는 형식의 문장을 각자 적어보는 것이지요. 행복이 주제였던 지난주 독서논술 수행평가와 관련지어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게 하고, 몇 백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고전문학 작품의 가치를 체험해보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학번과 이름이 나오는 줄 모르고 '흥덕고 학생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고 적어서 모두를 웃게 만든 아이도 있어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신중하게 입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점프 과제가 꼭 필요한 이유를 아이들의 재치 있고 감각과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답변을 보며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교재의 정답해설이나 교사가 준비한 예시답안과 차원을 달리하는,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답변 속에 담겨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내면의 생각과 만나면서 한 번 놀라고, 다른 친구들의 생각과 만나며 두 번 놀라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교사는 세 번 놀라게 되고요. ㅎㅎ


'행복하려면 마음이 몸에 노예가 되지 말자'라는 모법답안 외에, 상상하지 못했던 시어인 작품 속 '티끌'과 '보리'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는 아이들을 보며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학급마다 숫자는 차이나지만, 자신의 데이터를 쓰면서 퀴즈를 풀고 의견을 적어주는 고마운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하길 바라면서 '활동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코로나 블루가 없는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사방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까지 날으는 보리 티끌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무엇 하러 고향 떠나 벼슬길에 헤매리오

- 정약용, 「보리타작[打麥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퀴즈앤의 장점을 활용해서 참여하고 소통하는 수업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