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담임교사에 도전하고 싶다는 선생님께 드리는 글

by 글쓰는 민수샘


드라마 <블랙독>을 보고 제가 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고2 담임 선생님이 계셨어요. 고3을 앞둔 아이들과 상담을 하며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꿈이 없는 아이에게 "언젠가 목표가 생길 테니 일단 열심히 하자!"라고 말하는 것도, 현재 실력에 비해 너무 높은 목표를 가진 아이에게 "공부에 열정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봐"하고 격려하는 것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예전 글에 아래와 같은 기억을 적기도 했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있으니 한 달에 1번 이상은 상담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을 옆에 앉혀놓고 녹음기처럼 얘기하던 순간이 많았네요. "왜 꿈이 없니?,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성적이 오를 거야, 전문대라도 가야지 취직을 하지. 고졸이면 사람 취급 못 받는 세상인 거 몰라?"와 같은....


그 시절의 저보다 훨씬 나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저보다 더 나은 고3 담임샘이 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길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몇 자 더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고3 담임교사를 처음 해보고 싶은 마음은 '도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멋진 마음입니다. 고3이 담임의 꽃이 맞긴 한데, 어떤 열매를 맺느냐는 교사의 철학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고3 담임이 되어 아이들과 상담할 때, 다른 반이나 같은 반의 특정 아이와 비교하면서 '너는 왜 못 하니?, 너도 할 수 있다'라고 주문을 걸었지요. 그 후 처방전처럼 같이 공부계획도 세우고, 진로탐색에 대한 숙제도 내주었지만 몇 주에 다시 상담을 하면 그것을 실천한 아이는 10명 중 1~2명도 안 되었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이들을 탓했지요.ㅠ.ㅠ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잘 들어주고, 실수를 하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다시 기회를 주고, 부탁을 하면 짜증 내지 않고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어렵게 만난 아이들이라 더 애잔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짧은 1년이란 시간 동안, 그것도 19살 먹은 아이들을 담임인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집에서 매일 보는, 유전자를 물려준 아이들도 어찌하지 못하는데요...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개조시킬 수 있다겠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보는 모습이 그 아이의 전부도 아니고, 교사가 학생을 불러 진로와 진학에 대해 상담이라는 것도 이미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고요.

현대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크게 배움과 돌봄이라고 하는데, 담임 교사의 역할은 '돌봄'에 무게가 더 실려야 하겠지요. 돌봄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이고, 보살피는 것은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담 없이 담임교사에게 다가와서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교사가 먼저 엄격함과 편견을 버리고, 유머와 유연함을 가지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교사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필요하다면 웃으면서 잔소리하고, 귀엽게(?) 협박하오글거리게 칭찬해 주고, 학력평가 보는 날은 아침 일찍 온 아이들에게 간식도 사주면서, 저 스스로 재미를 느끼기 위해 애썼습니다. 공부가 아니라 배움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성적이 좋든 안 좋든 대학을 가든 안 가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학교 공부, 인서울 대학, 경제적 성공 같은 똑같은 말을 녹음기처럼 안 해도 되지요.


그래서 고3 담임이라고 특별한 다른 능력이나 태도가 요구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사들만 아는 입시정보는, 교사용 진학 프로그램의 전년도 입시 결과 정도이기 때문에 수시나 정시 원서를 쓸 때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함께 보면서 의견을 말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기본적인 정보를 모르고 무사태평인 아이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줘야 하는 위기의 순간도 넘기셔야 해요.

죄송하게도 저의 결론은 '고3 담임의 특별한 상담기법이 없는 것이 더 낫다'라는 것이 되어 버렸네요. 힘든 고3 생활을 함께 하면서 믿어주고, 걱정해 주고,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 사람 친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고3 담임 생활을 그래도 행복하게 보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담임교사를 친구로 생각하느냐, 하지 않으냐'하는 선택은 아이들이 하는 것이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이런 저의 수동적 대응이 불만인 아이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다른 선생님을 통해 짜릿한 자극이나 동기부여를 받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고민과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를 볼 때, 선생님의 말씀처럼 교사가 원하는 학생상을 만들어놓고 그 틀에 끼워 넣으려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고3 담임교사가 되실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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