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에 대한 신뢰가 결정하는 우리의 미래
지난 1월 9~10일에는 배움의공동체 전국운영위원 워크숍을, 16일에는 참여소통교육모임 겨울 연수를 원격으로 했습니다. 방학이면 늘 2박 3일로 진행하던 연수들인데, 온라인에서 간단하게(?) 하니, 상을 받는지 벌을 받는지 모르는 오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도 계속 마음속에 간직하며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질문과 저만의 답을 얻어서,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답니다.
그 질문은 "아이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교실 속 배움의 깊이를 결정하고, 학교에서 교사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을 다시 체감했지요.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만나 수업, 학생자치, 체험활동 등을 하다 보면 어려움, 당혹스러움, 분노 같은 다양한 감정이 생겨나서 '아이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하고 자문하고 되고 대개 '아이들을 믿는 내가 바보였어, 아이들은 믿을 존재가 못 돼'라고 자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어떤 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듯이, 교사 역시 어떤 동료를 만나는지에 따라 교직 생활의 목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가 10년 전부터 배움의공동체연구회와 참여소통교모임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바보처럼' 아이들을 믿고, 또 믿고, 속아도 믿고, 배신해도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중 한 분이 올해 퇴임을 하신다고 해요. 경기 배움의공동체연구회를 이끌어오신 분인데, 배움의공동체 전국 워크숍의 첫날에 그 선생님의 10년 전 수업을 다시 보고 배움을 나눴습니다.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는데, 수업 일시가 분명 '2010년'이더라고요. 퇴임을 앞둔 교사의 10년 전 수업을, 200명 가까운 선생님들이 함께 보며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교사의 자세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것에서 나온다'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경기도의 외곽의 어느 농어촌 고등학교의 물리선생님이 만드신 활동지에는 '물어보고 가르쳐주는 배움터'라는 교사의 철학이 커다랗게 적혀있었어요. 아이들을 믿지 못하면 꾸준하게 추구할 수 없는 가치이고, 그 가치를 지켜오다가 학교를 떠나게 되셨습니다. 퇴직 기념으로 그분의 수업을 다시 보는 줄 알았는데, 저의 생각이 짧았음을 금방 느꼈어요. 10년 전 수업 속에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 교사가 포기해버린 것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답니다.
참여소통교육모임의 연수 주제는 '위기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였습니다. 학생자치, 학교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선생님들의 발제를 듣고 줌 소회의실에서 토의도 했지요.
2020년을 치열하게 보낸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처럼 신뢰할 수 있는 동료 교사가 참 많다는 생각에 행복해졌어요.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이 많지만, 역시 위기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는 '세계 형성적 사태'를 만들었는데, 인류에게는 '세계 건설적 미래' 혹은 '세계 파괴적(해체적) 미래'가 동시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교사들은 당연히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아이들을 길러내야 하겠지요.
"이러한 아이들로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이 물음은 결국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만 초점을 바꿔서 다시 질문을 던지면 좋겠어요.
"도대체 아이들 말고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라고요. 인류의 평화, 자연과 공존 같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가 먹고살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을 신뢰해야 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희망을 갖는 아이들로 바꾸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본 세팅'을 신뢰에 두고 실천하는 교육활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번 연수에서 배운 것들을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 수업에서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모둠활동을 통해 해결하고 모둠 내에서도 평등하게 묻고 답할 수 있도록 역할을 미리 정하지 않는 것, 고등학교는 일단 모둠으로 앉으면 배우는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잘되지 않는 모둠은 교사가 충분히 돌보는 것
- 학급자치에서는 아이들에게 의제 선정과 의견수렴, 회의 방식, 실행 방법과 평가까지 맡겨서 제대로 된 진짜 회의의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해 담당 교사가 학생 대표와 단톡방을 만들어서 충분히 소통하며 사전 사후 교육을 꾸준하게 하는 것
- 학교 민주주의에서는 교직원의 호칭을 모두 '선생님'으로 통일하는 것처럼 생활 속 민주주주의 실천하는 것, 듣고 싶은 이야기와 불편한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고 솔직하게 토의하는 것, 찬성과 반대 의견 모두 불만을 갖는 절충안을 만들기 보다 모두가 양보해서 합의안을 만들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
두 연수를 마치고 오늘까지 계속 '인간은 다른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맵돕니다. 배울 준비나 능력이 부족하고, 성장과정에서 아픔을 겪은 소수의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기본 세팅을 '불신'에 맞춰놓고 '역시 아이들을 믿으면 안 돼'하고 되뇌며 교직을 마무리하긴 싫습니다.
아이들을 나와 같은 이성을 가진 존재,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진 존재로 보면서, 신뢰를 지킬 수 있는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