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저는 개교 이래 12년 차 혁신학교의 새로운 혁신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드벤처 게임에서 주인공이 퀘스트를 하나씩 깨나가듯 교직원 워크숍, 학부모 행사, 보고서와 계획서 작성 등 여러 가지 업무를 겨우겨우 해결했지요. 그리고 나서야 달콤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3월 2일, 아이들 앞에서 국어선생님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어려운 업무 퀘스트가 떨어지겠지만, 이것 역시 매년 새롭게 꾸려지는 학교라는 마을공동체에서 다양한 주민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마음으로 해나가려고 합니다. 학교에 가장 중요한 주민은 역시 학생인데, 다행히 3월 첫 주에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좋은 에너지를 받았고, 힐링도 많이 했답니다.
첫 시간에 3분 시험을 통해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서 신뢰와 연대가 있는 수준 높은 수업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에 이어서 두 번째 시간에는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활동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수업을 하면서 조금씩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고쳐간 것이죠. 책상 앞에 앉아 아무리 고민을 많이 해도, 한 시간 수업을 해보면 감이 딱 옵니다.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 미세한 공기의 흐름까지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고1을 맡아 대면 수업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다행이었어요.
원래 계획은 타이포그래피로 자기 소개하는 그림을 그려서 패들렛에 올리고 각자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학년초라 아이들이 표정관리를 하는지 무게를 잡아서 분위기가 훈훈해지지 않았어요. ㅜ.ㅜ 그래서 2차시 활동을 위해 미리 편성해놓은 모둠을 활용해서, 같은 모둠 친구의 자기 소개 그림을 보고 '어떤 친구일지 추리하는 댓글 달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고 댓글을 달아주었고 다른 모둠의 게시물도 둘러보고 친구들의 이름과 특성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참여하지 않는다고 아이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수업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도 확실히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들었지만, 아이들은 친구가 정성껏 표현한 이름 타이포그래피 사진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뚫어지게 보고 나서 댓글을 달았어요. '넌 설마 수학을 좋아하니? 그렇다면 정말 멋지구나', '꼭 미대 가!!! 너 진짜 재밌어 ㅋㅎㅋㅎ'와 같은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정말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비슷한 활동을 해봐서 그런지, 패들렛에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쓰는 것도 아이들은 별다른 질문 없이 척척해냈어요. 학급에 한두 명씩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 저의 휴대폰을 빌려주기도 하고, 나중에 집에 가서 사진을 올리거나 댓글을 써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꼭 학번 이름을 써야 하고, 장난치거나 댓글을 안 쓰면 점수를 깎는다"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미 저는 아이들을 믿기로 결심했고, 99%의 아이들이 진지하게 활동에 참여해서 저의 신뢰에 응답해 주었으니까요. 장난을 친 1%의 아이도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 되지 못한, 초딩같은 친구가 있네"하며 장난으로 올린 댓글을 웃으면서 지웠지요.
아이들의 이름 타이포그래피는 교실 뒤에 모두 붙였습니다. 학급마다 국어 도우미 2명을 자원 받아서 부탁했지요.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평등한 관계 속에서 배움에 몰입하는 수업에 도전하기'는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