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우아하고 싶었다.
- 교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뛰는 것이 아니에요!
신규 교사 때 교장 선생님께 혼난 이후로
웬만하면 학교 복도를, 계단을 뛰어다니지 않고
우아하게 걸어 다니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여유 있는 웃음을 흘리며
수업은 능숙하게 해내고
학교 업무는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우아하게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해서
우아한 저녁을 계획하며 퇴근하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 맡은 학교의 큰 행사를 치르느라
일주일 내내 행정실로 강당으로 교실로
허겁지겁 뛰어다니다 보니,
아이들과 시를 읽고 삶의 기쁨이나 허전함을 나눌 때에도
내 머리는 다음 시간에 처리할 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일머리가 없음을 자책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상하게 죄송하단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습관처럼 '우아하다'가 원래 무슨 뜻이었나 찾아보니,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라는 뜻이란다.
계속 뛰어다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챙기지 못한 일과 사람들 때문에 잠을 설쳐도
우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런 상념들이 아이들에게 읽어준 정지용의 시 '비'처럼
멎은 듯 새삼 돋아나서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