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추천
8월 26일 저녁,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근처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백여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비슷한 장면을 영화에서 본 기억이 나서 소름이 끼치면서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몇 장의 사진과 몇 초의 영상은 테러나 전쟁의 참상을 몇 십만 분의 1도 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히 아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은 더욱 그렇고 과거에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의 참상 역시 큰 감흥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와 관계가 나쁜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쉽게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미사일 쏘고, 폭격하고, 특공대를 보내 암살하고...
대신에 잘 만든 전쟁 영화는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전쟁영화를 찾아보는 편인데요, 8월에는 유난히 많이 봤네요. 특히 2차 세계대전,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관련 있는 '태평양 전쟁'에 꽂혀서, 관련 드라마와 유튜브 채널까지 정주행했답니다.
중학생, 특히 고등학생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로 가장 추천하는 것은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초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영화 두 편입니다.
'아버지의 깃발(2006)'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7)'는 모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았는데, 전자는 공격하는 미군들이 주인공이고 후자는 방어하는 일본군 입장에서 같은 전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총탄을 맞아 쓰러지나, 포탄에 맞아 날아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매우 리얼합니다. 미군이든, 일본군이든 말이죠. 실제 전투에서는 캡틴 아메리카도, 사무라이 닌자도 없으니까요.
두 작품 다 15세 관람가이지만, 이런 전투 장면 때문에 주의가 좀 필요합니다. 물론 게임에서 적군을 사살하는 것에 열중하고, 히어로들이 수 백명을 해치우는 오락영화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진짜 전쟁의 잔혹함과 무서움을 보여주는 효과는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만 편집해서, 미군과 일본의 관점을 함께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1945년 2월이면 전세가 미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서, 이오지마를 방어하는 일본군들도 단지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 시간을 늦추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합니다. 약 한 달간의 전투로 2만 933명의 일본군 중 2만 129명이 전사했고, 미군은 전사자 6,821명에 부상자가 2만 1,865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런 숫자들이 전쟁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전혀 실감 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전사자와 부상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우리와 똑같은 소중한 생명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음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실감 납니다.
'아버지의 깃발'에 등장하는 미해병대 헤이즈 일병은 인디언 출신으로 차별과 구박을 견디고 전쟁 영웅이 되지만, 스스로 파멸하고 맙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사이고는, 전쟁 전에는 아내와 함께 빵을 굽는 제빵사였지만 징집되온 이오지마에서 지옥을 경험합니다.
태평양 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 쟁탈전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섬 하나를 뺏고 지키기 위해 수만 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고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었지만, 권력과 자본을 가진 지배층은 워싱턴과 도쿄에서 편하게 지내면서 전쟁 후에도 대부분 건재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는 질문도 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전쟁하면 되지'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좋은 전쟁영화를 잘 선택해서 보여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