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살다 보면 아무래도 인간관계가 좁아집니다. 늘 만나는 사람이 학생과 동료 교사이고 학부모님과 만나도 역시 아이들 이야기만 나눕니다. 중고 동창이나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가도 말이 통하는 대상은 같은 교직에 있는 친구들이라 옆자리를 떠나기 어렵습니다.
독서를 하고, 연수를 듣고,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교양을 쌓아도 생생한 세상의 문제와 만나서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와 연결 짓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별명이 '다큐민수'가 될 정도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도 아이들의 시선을 확 붙잡는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더군요.
그렇다면 교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새롭고 생생한 세상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아이들의 '신선한 질문'에 담겨 있는 '아이들이 아직 모르는, 그래서 알고 싶고 궁금한 세상'입니다. 한 아이의 질문 속에는 그 아이가 만나는 세상의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배움의 대상과 만나서 생기는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물어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니까요?
사토 마나부 교수님도 이런 필요성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사에게 교양과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을 요청하고 있는데, 아직도 작은 우물 안에서 손바닥만 한 하늘만을 세상의 전부인 양 바라보며 안주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전문가로서의 위치를 찾으려면 교사 문화라는 고정된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이질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외부와 끊임없이 관계 맺어야 한다. 수동적으로 자기방어에 급급한 교사가 아니라, 교실을 열고 끝없이 배우고 소통하는 프로그램과 수업을 만들어가야 능동적인 교사가 될 수 있다.
- 사토 마나부,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중에서
교사가 매일 만나는 아이들의 질문은 교사가 매일 만날 수 있는 이질적인 문화이고 낯선 외부 세계입니다. 저는 소설, 특히 <춘향전>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질문을 만들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올해는 온라인 수업의 장점을 살려서, 아이들의 토론하는 내용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쏠쏠했어요. 수업을 시작하며 토론의 정의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자 의견을 말하여 논의함'이니까 찬성과 반대, 승리와 패배를 의식하지 말하고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춘향전>에 관해 궁금한 점도 서로 물어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모둠별 단톡방에서 각자 질문을 던지고, 그중에서 모둠 질문을 정해서 토론한 후, 패들렛에 각자 토론 내용과 소감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첫날 수업에서 아이들이 모둠 질문을 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려서, 정작 제대로 토론하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생겨 약간 아쉬웠어요. 그래서 다음 날 첫 수업 학급에서 제가 '춘향과 몽룡은 순수하게 서로 사랑했을까?'라는 주제를 던지고 토론하게 했지요. 이 질문을 통해 인물의 심리나 시대적 상황 등이 다양하게 드러날 것을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전날보다 토론의 양과 질이 조금 부족지더군요. ㅠ.ㅠ. 교사가 정한 토론 주제는 어쩔 수 없이 그 교사가 만난 세상에서 나온 질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과 거리감이 생겨서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교사가 의도한 정답을 의식해서인지 토론에 활력이 떨어지고 패들렛에 각자 글을 적는 것에 신경쓰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다 저의 욕심때문이었지요.
그래서 다음 학급에서 다시 어제의 방식으로 토론했더니, 저부터 다시 흥미가 생겼습니다. 돌아보니 각자 질문을 만들어 던지는 것부터 아이들이 수업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고, 모든 질문이 소중함을 인정하면서 모둠 토론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한 모둠이 '<춘향전>의 이몽룡과 같은 암행어사가 실제로 많았을까?'라는 주제를 결정하는 대화 과정과 토론을 마치고 각자의 생각을 패들렛에 적은 마무리 활동의 사진입니다.
'아이들의 질문과 대화'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저는 다시 즐거운 고민에 빠집니다. 어떻게 다음 수업과 연결할 것인가? 아이들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얹어서 더욱 깊이 있는 배움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아이들의 대화를 다시 읽으면서, 교사로서 저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어 행복합니다. 사토 마나부 교수님이 강조했던 배움의공동체의 '수업 임상'이 주는 힘입니다.
의사들은 병상 옆에서 성장하고, 교사는 아이들 책상 옆에서 성장한다. 의사나 교사나 전문 역량을 쌓아가는 과정이 똑같다.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사례 연구를 하며 전문 역량을 쌓듯이, 교사도 수많은 수업 사례를 연구하며 전문 역량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사들은 ‘교실과 아이들’이라는 임상의 천연자원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수업에 관한 공부를 책 찾아가면서 했다. 실천의 지(智)가 아닌 이론의 지(智)에 매여 있어서다. 본인이 임상 전문가이고 임상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