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D.P.>를 많이들 보셨죠? '탈영병 체포조' 헌병을 뜻하는 'D.P.'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준 우리나라의 인권 감수성 수준은 처참할 정도였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최악의 빌런 '황장수'와 느낌이 비슷한 학생을 예전 학교에서 만난 기억이 나서 무척 우울했습니다.
학교에서 약한 친구를 '괴롭혀도 되는구나'를 느낀 수많은 '황장수들'은 군대에서 더 지독하게 후임들을 괴롭히며 쾌감을 느낍니다. 저는 군대에서 이런 폭력적인 고참을 만나지 않아 운이 좋았지만, 저라도 비인간적인 군대 폭력을 당하면 나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D.P.>를 쓴 김보통 작가님도 인터뷰에서 '폭력의 굴레가 이어지도록 방관한 자신에 대해 참회'하는 기분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네요. (제 군대 이야기를 조금만 할게요. 죄송^^;) 저는 전방 바로 아래 육군 포병부대에서 2년 2개월하고 10일을 더 복무했어요. 문과였지만 이과 자원이 부족했는지 본부 포대(중대)의 계산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고, 같은 내무반 고참들도 거의 다 대학생이었지요.
제가 군대를 좀 늦게 갔고, 몸치에다 국문과 출신이 계산기 붙들고 삼각함수를 푸는 게 불쌍했는지 고참들도 대우를 좀 해줬어요. 아니면 저를 좀 포기(?)했는지 심하게 갈구거나, 폭력을 쓰지는 않았지요. 야외 훈련이 많은 부대라 전우애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본부 포대라도 다른 내무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저보다 더 위험한 일을 하는 보직이 많았고, 밤이면 으슥한 곳에 집합해서 부동자세로 서있는 후임병들을 가끔 목격했습니다. "다른 내무반의 어떤 상병이 어떤 일병을 어떻게 조졌더라. 어떤 병장이 밤마다 어떤 이상한 짓을 하더라" 이런 말을 들어도 '나만 안 그러면 되지'하면서 무감각했던 기억이 2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떠올랐습니다. 잘 만든 드라마가 제 피부에 돋게 한 소름이지요. 제가 병장이 되고 분대장을 할 때 다른 내무반의 이병, 일병들의 표정도 살펴보고 초코파이라도 챙겨줄 걸, 하는 반성을 했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10대, 20대에게 "대한민국이 선진국인가?"라고 물어보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더 높다고 합니다. 드라마 <D.P.> 열풍을 통해서, 단순히 군대 문제만 논의하지 말고, 선진국 다운 '일상의 민주주의' 실현 문제가 모든 세대에서 더 공론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군대니까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군대도 그러면 안 된다'라는 논의가 필요하듯, 학교에서도 '대학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대학 입시가 중요해도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당하면 안 된다'라는 말들이 더 많이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이니까 그래도 된다. 여군이니까 그래도 된다.'라는 말은 사라지고요.
민주주의는 개인에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길러주면서 자라나고, 집단에게는 평등한 관계, 개방적인 소통 구조를 통해 뿌리를 내려서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독재 국가는 소수자, 약자의 고통과 사회 부조리가 낳은 사건, 사고들을 예외로 취급하고 언론이나 문화예술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통제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는 반대로 그것을 들춰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독재 국가보다 더 행복한 개인과 더 강한 국력을 만듭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군대든 학교든 직장에서든 다 통한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면서, 개인의 행복지수도 높이는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