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때문인지 교사나 중고생이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중에 괜찮은 작품을 찾아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일본과 중국 작품을 보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1980~90년대 학교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사가 오래된 남자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선생님들은 전교생의 시험 성적을 1등부터 꼴등까지 복도에 게시해 놓는 집념을 보여주셨고, 수학·과학적 사고가 돌아가지 않아 슬픈 뇌를 가진 저 같은 학생들도 눈을 부릅뜨고 칠판을 보게 하는 무시무시한 물리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는데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귀싸대기를 맞기도 했고, 복도에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우아하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전하던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88년도 남고(男高)' 같은 모습을 최근의 일본과 중국의 학교에서 다시 보게 되면, 변하지 않는 두 나라의 학교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분명 다 같은 21세기의 학교인데요. 일본은 모두 똑같은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등교해서 반장의 구호에 맞춰 모든 아이들이 일어나 교사에게 인사합니다. 대부분이 시험 대형으로 혼자 앉아 강의식 수업을 들어야 하고, 학교에 휴대폰을 가져오지 못하고, 악세서리는 당연히 못하고, 배가 고파도 매점이 없고, 복도에서 살금살금 걸어 다녀야 하는 학교도 많다고 합니다. (아래는 일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입니다.)
중국은 더 합니다. 얘네들은 교복만 아니면 군인인지, 학생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중국의 수능인 가오카오(高考) 하나만 바라보고, 암기라는 무기만 손에 쥐고 돌격하고 있지요. 학생 인권과 개성 존중, 학교 민주주의가 비집고 들어갈 분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오카오를 앞두고 열리는 출정식 장면만 봐도.... 많이 무섭네요. 학교에서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은 대역 죄인 취급을 받을 것 같아요. 예체능 학교도 군사훈련을 시키듯, 소수의 엘리트 육성에만 열심입니다.
두 나라의 학교가 이런 까닭은, 도쿄대와 북경대 같은 명문대를 많이 보내기 위해서겠지요. 그러나 명문대를 많이 보내기 위한 입시 위주 시험공부가, 오히려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상위권 학생들이 창의력을 기를 수 없고, 다른 학생들이 공부 이외의 영역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도 뺏어 가니까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발표한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에 크게 앞선 세계 5위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인적 자본·연구 분야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네요. 국내 총생산(GDP) 대비 특허와 디자인 출원, 인구 대비 연구원 수, 하이테크 수출 비중, 전자 정부 온라인 참여 등에서 순위 향상이 일본과 중국에 앞선 결과라고 합니다.
한국의 학교가 아직 개선할 점이 많지만, 이웃나라에 비해서는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민주적인 곳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혁신학교가 생기면서 불과 1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어른들은 아직도 대학 이름과 숫자로 표시되는 학력 향상에 목을 매지만, 많은 아이들이 이를 가볍게 웃어넘기고 저마다 인격과 개성을 존중받으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화장을 진하게 한 학생도 친구들과 어울려 모둠활동을 하고, 선생님과 웃으면서 대화를 합니다. 서로 편견을 가지고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평등하니까 행복하고, 행복하니까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 되어 가고 있나 봅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 생활이 우리의 경쟁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