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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Sep 26. 2021

'오징어게임' 불평등도 한류로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나라

- 스포일러 없는 '오징어게임'의 짧은 감상. 반전 있음.

 넷플릭스 공개 초기에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세계 1등을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불평등도 한류로 만들어버리는 대단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는 않네요.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보다 지금의 한국이 더 불평등한 나라'라는 김누리 교수님의 말씀이 실감나서, 드라마를 보는내내 답답하고 우울했어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상황이 외국인들에게 잘 팔렸고, <D.P.>에서는 그런 분단국가의 군대에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청년들의 비극이 결제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킹덤>에서는 지독한 배고픔으로 시신을 끓여먹어야 하는 조선 시대 백성들의 참상이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상기시키면서, 좀비라는 허구를 압도하며 세계적인 흥행에 힘을 실어주었지요.

  <오징어게임>이 바통을 이어받아서 국위 선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1~2등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마냥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이러한 선풍적인 인기는 <오징어게임>의 우승 상금 456억원보다 더 큰돈으로 바뀌어, 많은 이들의 통장 속에 입금이 되겠지요.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과 폭력적 진압으로 직장을 잃어버린 남자, 돈이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탈북자 여성, 자본주의의 끝없는 탐욕을 상징하는 증권사 직원과 자본주의 욕망을 위해 버려지는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도 넥플릭스라는 주인님 손에 놀아나는 또 다른 말일뿐입니다.


  요즘 이 드라마의 잔상이 계속 남아서, 바깥바람을 많이 쐬는 편인데요. 오늘 아침에 산책을 하며 팟캐스트로 쿠바 역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행자가 '체 게바라'에 관해 말하면서 이런 멘트를 하더군요.


 "체 게바라는 청년 시절에 남미 종주 여행을 하며 잔혹한 자본주의 체제에게 신음하는 노동자, 농민의 삶을 목격하고 혁명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미국 마이애미에 가서는 자본주의의 환락과 풍요와 대비되는 흑인들의 참상을 보며 분노했다. '1%의 최상층 부자들이 1등급 등심 대신에 불고기처럼 조금 저렴한 고기를 먹으면, 기아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부자들이 순순히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심약한 제가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화면과 소리를 줄이면서 힘들게 <오징어게임>을 끝까지 보게 만들고, 며칠간 계속 불편하게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 작품의 황동혁 감독님이 대단한 것 같아요.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에서 작은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1+++ 등심' 앞에서 서성이지 않고, 오징어 게임을 하던 어린 시절에 제가 그랬듯이 불고기를 마음껏 못 먹는 이웃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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